표적에 대한 성경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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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과 유대인의 관계

  은사주의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방언과 치유 -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신유(divine healing)라고 불려진다. - 의 이적이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두 가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보다 더 자극적인 것일 것이다. 따라서 방언과 치유는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에 대한 일종의 “표적”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표적들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도들의 표적의 계승자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방언을 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사도행전 2장과 10장과 19장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음과 동시에 방언을 한 사실에 기초한다.

  이 모든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표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적을 행하셨다면, 언제나 동일하신(히11:8)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똑같은 방식으로 표적과 기적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표적”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적”과는 다르다. 표적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증명하는 도구이다.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러한 표적들은 바로 예수께서 증거 하시고자 하는 것을 청중들에게 입증하시는 데에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하면 표적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표적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마8:27), 14장에서는 비슷한 사건 속에서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요한복음에서는 주님의 이러한 이적들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표적의 목적은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다만 이런 일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20 :30,31).



  특히 예수님의 표적이 그 분이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왕국복음”과 더불어 이러한 표적들이 사용된 것을 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마4:23,24; 9:35).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은 자신이 왕이시라는 그 분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도구였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표적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는가? 그것은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이다(고전1:22).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그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탄생할 때에 표적과 더불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는 아브라함이다. 그러나 그들이 민족적으로 불어냄을 받은 것은 모세를 통해서였다. 표적, 특히 치유의 이적은 이 모세에게서 처음 등장한다. 모세가 품에 손을 넣었다가 뺐을 때 문둥병이 생기고 다시 넣었다 뺄 때 치유되는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적어도 성경 기록상 아무도 병들었다가 치유된 사람이 없었다(출 4장). 이집트인들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으로 고통당할 때도 이스라엘은 그 고통을 면했다. 그들이 광야에서 불 뱀에 물려 고통당할 때는 놋 뱀을 보고 치유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네가 주 너의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 기울이고...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가져왔던 그 질병들의 하나도 너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가 너를 치유하는 주이기 때문이라』(출15:26)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탄생할 때부터 표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물론 “표적”이라는 것은 반드시 어떤 기적적인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할례를 유대인에게 표적으로 제시하셨는데, 안식일과 할례는 전혀 기적적인 일이 아니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일종의 언약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주장을 입증해 주는 도구였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표적과 더불어 탄생되었고, 표적으로 가르침 받고 양육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예언을 하실 때도 표적을 사용하셨다. 동정녀 탄생에 대한 예언도 “표적”으로 제시되었다(사7:14).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왕이 임하시는 것도 표적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치유의 표적은 예수께서 왕이심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질병의 치유가 왕의 표적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주의 날”에 대해 예언한 것이 성취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겔34:16, 사33:24; 35:6). 메시아로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병든 자들을 치유시키실 것 이었다 :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리니, 거기에 거하는 백성은 죄악이 사해지리라』(사33:24). 『그때에 절름발이가 사슴처럼 뛰고,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 광야에는 물이 솟아나오며 사막에는 시내가 흐르리라』(사35:6).



  이것은 천년왕국에서의 병든 자의 치유를 말한다. 질병의 치유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과 관련이 있는 것은 질병의 치유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그 분에 대한 예언과 이처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임하시기 위해 질병의 치유라는 “표적”을 행하실 필요가 있었다. 이 일은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왕국복음을 위임하시면서 역시 “질병의 치유”를 표적으로 주셨다. 『가서 전할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문둥병자들을 깨끗케 하며, 죽은 자들을 살리고, 마귀들을 내어 쫓으라. 너희가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어라』(마10:7,8). 이러한 일들을 표적으로 주신 것은 “너희가 이러한 표적들을 볼 때에 그가 너희의 왕임을 알라.”는 것이었다.

  왕국복음과 치유는 마태복음에서 계속해서 강조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치유(healing)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유대인에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왕국복음과 관련해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서 전할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마10:5-7).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천국복음을 듣고 그 분이 행하신 이적들을 표적으로 보며 예수님을 따랐다(마4:24,25).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행하시던 표적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오류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행하시던 표적은 “메시아의 표적”(Messianic sign)이었다.



  표적으로서의 방언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메시아의 표적은 제자들에게 “사도들의 표적”(Apostolic sign)으로 계승된다. 이것은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왕국복음을 위임하시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사도들의 표적 역시 예수님의 표적과 같았다. 그들의 표적도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의 표적이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방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여기서 방언이란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의미 없는 혼미한 소리가 아니라 분명한 “외국어”였다.

  성경은 방언이 하나의 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언들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지만』(고전14:22). 방언이 표적이라는 말은 방언이라는 현상을 통하여 제시하고자 하는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방언은 “영적인” 언어도 아니며, 방언을 통하여 풍성한 영적 생활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방언을 해야만 성령체험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방언을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진리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유대인들에게 알려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 역시 “왕국복음”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여러 가지 표적으로 자신이 왕이심을 증명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서 떠나가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님이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주님이 맡기신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성령님께서 오순절에 임하셨을 때 제자들은 큰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했다(행 2장).

  그런데 그 성령님께서 임하신 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신 현상이 바로 방언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여러 나라의 방언을 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고, 제자들은 이 일을 성령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제자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메시야를 전파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던 천국복음을 다시 전하면서, 너희가 바로 그 메시야를 죽였다며 회개를 촉구했다. 군중들은 예수라는 선지자가 죽은 이후 그 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는데, 바로 그 분의 제자들이 그 분의 이름을 빌어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왕이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고 죽였다. 그런데 그 믿지 않던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아야만 믿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믿으라고 제시되는 표적이었다.

방언은 다시 사도행전 10장에서 나타난다. 여기서는 유대인이 방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인 코넬료가 한다. 그러나 코넬료가 방언을 한 것은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던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표적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베드로는 이미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내려주신 음식을 더럽다고 거부했다. 그는 이방인이 성령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설교를 하는 중에 성령께서 이방인에게도 임하시는 것을 보았다(행10:44,45). 그때 베드로는 그 “표적”을 보고 이방인들도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사도행전 15장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이 사실을 증거 했던 것이다(행15:8,9).

  이와 같이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믿도록 하기 위해 주어지는 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당시에 이방인들은 이러한 목적으로 방언을 했다. 그리고 그 방언들은 어느 정도 지속되었고,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사도 바울이 그 행위에 대해서 꾸짖게 되었다.

  당시에 행해지던 일련의 표적들, 즉 방언과 치유와 마귀들을 내어 쫓는 일들은 사도들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적들은 기본적으로 왕국복음이 전파되던 중에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표적들은 그 분이 왕이심을 증명했다. 사도들도 그 분이 왕이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표적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스테판의 설교 때에 유대인들이 다시 한 번 예수님을 거부한 사도행전 7장 이후에는 예루살렘에서는 어떠한 표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에는 바울 사도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제시되는 이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점차로 사라져 갔다. 이러한 일련의 표적들은 왕국복음의 특징들이기 때문에 왕국복음이 사라져 가면서 이러한 표적들도 사라져간 것이다. 열두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도 왕국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거부로 왕국복음은 사라져갔고 대신 바울 사도를 통해 은혜의 복음이 전개되었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러한 책이다. 왕국복음이 전파되다가 사라지고, 사도행전 8장 이후로 은혜의 복음이 확장되면서 28장에 이르러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왕국복음은 전파되지 않고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혜의 복음이 가득 차게 된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이 유대인을 떠났다고 말한다.) 이후로 바울서신에서는 교회의 교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표적을 동반한 왕국복음은 교회의 휴거 이후에 유대인들에게 다시 나타날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서 2장의 내용은 마지막 날들에 성취될 예언이다.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그 구절을 인용한 것은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그 분의 왕국을 세우실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계승해 표적을 행하였고, 왕국복음을 계속 전한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거부로 인해(행 7장) 미래로 연기되었지만, 당시는 왕국이 임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 표적은 행해졌다. 더군다나 이 표적들(막16:17,18)은 대환란 시기에 처한 유대인 성도들에게 메시야의 재림 직전에 다시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과 치유라는 표적들은 유대인들과 관련한 왕국복음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에게는 처음에 나타났던 이적들이 사도행전이 끝나가면서 사라져간 것이다. 왜냐하면 왕국복음이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래로 연기되었다.) 그 증거로는 바울이 자기 자신의 병도 고치지 못한 것과(고후12:7-9) 디모데의 병을 고치지 못하여 약을 권한 것(딤전5:23), 그리고 바울이 트로피모의 병을 고치지 못해서 밀레토에 남겨둔 것(딤후4:20) 등을 들 수 있다.

  표적은 사도시대 이후에 사라져갔다. 그래서 교회의 교리를 다룬 바울서신에서는 육신적인 교회의 대표 격인 고린도교회 외에는 방언을 언급하지 않았고, 그나마 방언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금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문맥을 주의해서 보기 바란다.) 바울이 많은 방언들을 말해서 감사했던 것은 그가 많은 외국어를 구사해서 복음을 유용하게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언어감각이 남보다 뛰어나 외국어를 더 빨리, 또 많이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그의 달란트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다. 굳이 방언의 은사를 이 시대에 적용하려면 외국어를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좀 더 효과적으로 언어를 터득하게 되는 것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는 왕국복임이 전파되지 않는 이때에, 더구나 유대인과 관련되지 않은 이때에 표적으로서 방언을 행한다는 것은 전혀 비성경적인 일이다.

  방언은 표적이다. 치유의 이적도 표적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왕국복음의 표적이다. 이 왕국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재림) 의와 화평으로 통치하신다는 것이며, 이 표적들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왕국의 왕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왕국은 팔레스타인에 세워질 다윗의 보좌로 대표되기에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므로 이 표적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이 시대에 누구든지 사도들의 표적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이다(계2:2-3).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9월호  (통권 42 호)   page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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