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4 - 말씀을 거절하는 왕과 백성(예레미야 35,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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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예언의 전체적으로 흐르는 큰 주제 중 하나는 "언약의 말씀"이다. 유다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어겨서 심판받는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언약(새 언약)을 맺어 주신다는 것, 또한 그 심판이 어떠한지 그 구체적인 내용과, 언약과 명령에 신실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내용들이 각 장마다 다각도로 강조되어 있다. 앞선 장들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에 얼마나 신실하셨는지를 잘 보여 주었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유다의 모습은 전혀 신실하지 않다. 여기 35-36장은 두 가지 극명하게 대립되는 상황을 통해서 유다의 불순종을 잘 보여 주고 있다.



1. 레캅인들의 순종(35장)

  레캅인들에 대한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순종을 보여 주는 이 장의 시대적 배경은 여호야킴왕 때이다. 여호야킴은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의 공격을 받는 첫 왕이다. 이어지는 36장은 『여호야킴 사 년째』(36:1)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해가 바로 느부캇넷살이 침공해서 사람들을 사로잡아간 해이다. 따라서 36장과 연계해 볼 때 35장은 바빌론의 공격을 받기 전후의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레캅인들"을 초대하여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레캅인들은 시험을 통과하여 그들의 신실함을 보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본으로 삼아 유다의 불순종을 책망하셨다.

  레캅인들은 그 기원이 정확치는 않으나, 역대기상 2:55을 통해 그들이 "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켄인은 원래 카나안 땅의 한 족속으로(창 15:19) 모세의 장인과도 연관되어 있다(판 1:16; 4:11). 재판관기 4장에서는 켄인 헤벨의 아내 야엘이 카나안의 군대대장 시스라를 죽인 내용이 나온다. 또한 다윗이 유다에서만 왕이 되었던 시절에, 레캅인들 둘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이고 다윗에게 갔다가 오히려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일도 있다(삼상 4장).

  이 레캅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 레캅의 아들 요나답의 명령에 따라서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집도 짓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고, 장막에서 살고 있다(렘 35:6,7).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 땅에서 멸절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 이 일이 다윗 때에 일어난 일이라 해도 그들은 3백 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 왔던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장막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느부캇넷살이 침공하자 어쩔 수 없이 본문 당시에는 예루살렘 안에 들어와 있다(11절). 그리고 그들은 그들 조상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예레미야가 베풀어 준 포도주 잔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유다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레캅인들은 그들 조상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자 일찍 일어나 말하였으나 너희는 내게 경청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신다(14절). 선지자들을 보내어 다른 신들을 좇지 말라고 그렇게도 말씀하셨지만, 유다는 그들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하나님께 경청하지 않았다(15절).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선언했던 모든 재앙을 가져오리니...』(17절)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해 책망하실 때 자주 말씀하시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 말씀을 한 이방인 족속과 비교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처럼 언약의 백성이 아니다. 어떠한 약속도 받지 못했다. 그러한 그들도 조상의 약속을 3백 년 이상이나 지키고 사는데, 이스라엘은 무수한 축복과 고귀한 언약들을 받고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던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비교되는 것은 그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처음 명령하셨을 때부터 "성별"을 명하셨다. 율법을 주실 때에도 이방인들과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이스라엘은 모든 이방인들과 구별되어 "독특한 보물," "제사장들의 왕국," "거룩한 민족"이 된 것이다(출 19:5,6).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한 이방인 족속, 그것도 그들에게 일찍이 정복당한 족속과 비교를 하시는 것이며, 더욱이 극악무도한 이방 제국인 바빌론을 통해 심판하시는 것이다. 17절에서 "내가 그들에게 선언했던 모든 재앙"이란, 일찍이 율법에서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내리겠다고 선언한 심판들이다. 예컨대 신명기 28:15-68에서 선언하신 끔찍한 심판들, 즉 기근, 전쟁, 전염병, 사로잡힘, 황폐함 같은 심판들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두 족속을 비교하고 계신다. 하나는 약속의 말씀을 지킨 한 이방인 족속, 또 하나는 약속의 말씀을 거절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께서는 레캅인들에게 이러한 축복의 약속을 주신다. 『레캅의 아들 요나답에게는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한 사람도 부족하지 아니하리라』(19절). 이로써 하나님의 성품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인간끼리의 사소한 약속도 그것을 지키시는 것이 의로운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신실한 사람이라 평가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언약을 지키심에 있어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한편 레캅인들에 관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준다. 그것은 그들이 지켜온 성별의 자세다. 포도주를 안 마시겠다는 것은 세상적인 기쁨을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집도 짓지 않고 밭도 가꾸지 않겠다는 것은 세상 문화와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경우엔 수도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한 금욕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이러한 삶의 방식이 오늘날 너무나 세속화되어 있는 이른바 "기독교인들"에게 성별의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예후디의 칼과 여호야킴 (36장)

  35장에 이어서 36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유다의 구체적인 한 모습이 나온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악하고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를 기록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기록될 내용은 『요시야의 날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민족들에 대하여 내가 네게 말했던 모든 말들』(36:2)이다. 여기서 "오늘"이란 여호야킴 제4년이다(1절).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킬 수도 있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유다 집이 내가 그들에게 행하려고 계획하는 모든 재앙을 듣게 되리니 그들이 각자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이킬 것이요,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죄악과 죄를 용서하리라』(3절). 범죄에 대한 심판을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들이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 남아 있다. 본문은 지금 여호야킴 제4년, 즉 느부캇넷살의 첫 번째 침공 시기지만, 만일 그 후에라도 그들이 회개만 했다면 용서해 주실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본문 상황에서 "감금"되어 있다(5절). 그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발설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룩이 기록하고, 바룩이 성전에 가서 백성들의 귀에 읽어 주게 된다(6절). 9절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이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금식을 선포했다. 하지만 고관들은 달랐다. 고관들은 이 선포된 말씀을 왕에게 보고했고(20절), 왕은 예후디를 보내어 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읽게 했다(21절). 그리고 왕과 고관들은 그 선포되는 말씀을 완전히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예후디는 왕과 고관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서너 장 읽고 손칼로 잘라 화덕에 넣어 태워 버리고, 또 서너 장 읽고 잘라 태워 버리고 있었다(23절). 물론 이것은 왕의 명에 따라 한 것이다. 27절은 "왕이" 그 말씀들을 불살랐다고 되어 있다. 이제껏 이런 왕이 없었다. 수많은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지만, 그것은 순종하기를 거절했다는 것이지 말씀 자체를 파괴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호야킴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그 말씀을 없애 버리려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또 극악한 죄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라 하신 말씀이라면 "성경"인데, 성경은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다(딤후 3:16). 그렇다면 영감으로 기록하신 말씀을 어떤 왕과 신하가 없앤다 해서 없어지겠는가? 비록 이 성경이 최초의 원본이고, 아직 어떤 사본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보존하셨다. 예레미야에게 또다시 그 말씀을 기록하라 하신 것이다.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 왕 여호야킴이 불사른 처음 두루마리에 있었던 이전의 모든 말들을 거기에 기록하고』(28절). 이 기록한 말씀이 바로 45-51장 말씀이다. 45:1에는 『유다의 요시야왕의 아들 여호야킴의 제사년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 대로 그 말씀들을 책에 기록했을 때...』라고 말씀하여, 45장 이하의 내용들이 36장에서 언급하신 그 말씀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깨뜨렸다가 새로 기록한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써 주신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추잡한 축제를 벌이는 것을 본 모세에 의해 깨뜨려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새로 돌판을 만들어 십계명을 기록해 주셨다(출 34장). 이때 두 십계명 돌판의 차이가 무엇인가? 없다.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도 두 번째 두루마리와 첫 번째 두루마리는 차이가 없다. 오히려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첫 번째보다도 더 많은 예언들이 추가되어 있다(32절).

  이것은 "사본의 영감성"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오늘날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믿는다고 하는 보수적 학자들마저도, 그 "영감"을 오직 "최초의 원본"에만 적용하고 있다. 사본이나 번역본엔 영감이 없으며,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완전치 않다는 것이 학자들의 논리이다. 하지만 틀렸다. 예레미야나 모세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본이 원본과 "똑같이" 기록되었다면 그 사본은 원본과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최초의 원본이라는 그 두루마리에 대해서 어떤 유적으로서의 가치를 논할지 모르겠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오직 그 기록된 말씀 자체이고, 그 말씀을 어떤 두루마리, 어떤 종이에 베껴 썼다 할지라도 올바로 필사되기만 했다면 그것은 최초의 원본과 똑같이 "영감받은" 사본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딤후 3:16)라고 말했을 때, 디모데가 갖고 있는 그 성경은 사본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그 사본들에게 "영감"을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본들은 원본을 충실히 필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킹제임스성경>을 읽고 있는 성도들은 자신이 "영감"받은 성경을 읽고 있다고 믿어도 좋다. 왜냐하면 <킹제임스성경>은 원본을 그대로 전수한 성경이기 때문이다.

  한편 예레미야의 이 "영감받은 말씀"은 예레미야의 손이 아닌 바룩의 손을 통해서 기록되었다. 『그때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니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 주의 모든 말씀들을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한 대로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더라』(4절). 이것은 두 번째 두루마리를 만들 때도 동일했다(32절).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이 "입"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영감"(inspiration)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입김으로 주어졌다는 의미가 있다. 베드로후서 1:21도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 물론 예언의 선포 없이 기록으로만 남긴 성경들도 있지만, 성경의 많은 책들이 하나님께 감동받은 누군가에 의해 선포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 적는 형태로 기록되었다. 사도 바울 역시 대필자를 통해 서신서들을 기록했다(롬 16:22). 그렇다고 성경의 저자가 그 대필자인 것은 아니다. 바룩이 기록했지만, 여전히 예레미야서의 저자는 선지자 예레미야다. 바울 서신서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자를 통해 영감을 주셨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36장에는 "말씀들"(words)이라는 말이 10여 차례 나온다. 그만큼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강조하는 장인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감"받은 말씀이 어떤 것인지 정의해 주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고 그것이 기록되어, 사본으로 남겨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말씀을 영원토록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 12:6,7, 마 24:35). 따라서 최초의 원본이 없어졌기에 오늘 우리에게는 완전한 말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본문을 통해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유다 왕 여호야킴과 고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했다. 그들은 약소한 한 타국인 집단인 레캅인들보다 못했다. 이 둘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판결을 내리시는지 주목해 보라. 레캅인들에 대해서는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한 사람도 부족하지 아니하리라.』(35:19)고 말씀하시는 반면, 여호야킴에 대해서는 『그에게는 다윗의 보좌에 앉을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그의 시체가 버려져서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36:30)고 말씀하신다. 이 예언은 정확히 성취되었다. 여호야킴에게는 여호야킨이라는 아들이 있어 보좌를 물려받긴 하지만, 그는 3개월만 앉아 있었고, 그것도 바빌론의 감시 속에 앉아 있다가 사로잡혀간 것이니 감히 다윗의 보좌에 앉아 통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여호야킨 다음에 시드키야가 마지막 왕으로 11년간 통치했지만, 그는 여호야킨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이었다. 또한 여호야킴은 사로잡혀가는 과정에 죽임을 당한다. 그의 혹독한 죽음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22:18,19에서도 예언된 바 있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1년 2월  (통권 227 호)   page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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