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3 - 이스라엘의 불충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예레미야 32-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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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장에서는 "새 언약"(New Covenant)이라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다루어졌는데, 이것은 예레미야 예언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예레미야는 전반적으로 유대의 멸망과 대환란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그 민족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32-34장도 회복의 메시지가 담겨 있으며, 31장에서 언급한 새 언약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들은 모두 "언약"이라는 주제로 일관한다.



1. 하나므엘의 밭에 대한 표적(32장)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시드키야 때이다. 시드키야는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었는데, 이는 예레미야가 유다에게 나쁜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나쁜 예언이란 다름이 아니라, 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왕이 자기 왕국이 멸망한다는 예언을 좋아하겠는가? 멸망하기 직전에 놓인 왕국의 왕이라도 그러한 예언을 하는 선지자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예언은 단순한 악담이 아니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예언인 것이다. 사실 예레미야는 단순히 멸망만을 예언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살 길을 예언했었다. 그것은 바빌론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운명에 처한 유다 왕이 민족적 자존심을 내걸며 바빌론 왕에게 대항한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 대항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멸망은 그들의 죄악 때문에 주어진 심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애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멸망만을 선포하지 않으시고, 회복을 함께 선포하신다. 31장에서 그 회복의 메시지는 "새 언약"을 통해 제시되었었다. 여기 32장에서는 그 회복을 증거해 줄 특별한 표적을 제시해 주신다.

  그 표적은 하나므엘이라는 예레미야의 사촌을 통해 주어진다. 하나므엘은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와서 자기 밭을 사라고 청한다(32:8). 하나님께서 이 일을 예레미야에게 미리 알려 주셨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밭을 사게 된다. 증인들을 감옥으로 불러세우고 돈을 지불하여 그 밭을 사는데, 문제는 왜 감옥에 있는 그가 밭을 사야 하는가? 또 예레미야는 유다가 곧 멸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빌론이 와서 그 밭뿐 아니라 모든 땅을 황폐하게 할 텐데 왜 그는 밭을 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야 하는가? 이에 예레미야도 이와 같이 외친다.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돈을 주고 그 밭을 사고, 증인들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읍은 칼데아인의 손에 넘어갔나이다』(32:2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하나의 표적으로 삼아 주신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들의 범죄 때문에 멸망이라는 심판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회복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말하기를 "이 땅이 황폐하여 사람도 짐승도 없어 칼데아인들의 손에 넘겨진다." 한 이 땅에서 밭들을 사게 되리니』(43절).

  멸망할 나라에서 땅의 거래와 소유권의 인정만큼 확실한 회복 예언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멸망은 일시적인 심판일 뿐이다. 예레미야는 이미 앞서 그 기간이 70년임을 예언한 바 있다(25:11). 하지만 70년은 최대치이며, 사실은 그보다 훨씬 미만이다. 여호야킴 4년에 있었던 느부캇넷살의 1차 침입과 포로 됨이 B.C. 606/605년이고 코레스왕에 의해 돌아온 1차 회복이 B.C. 536/535년이기 때문에 70년이라는 포로기간이 설정되었다. 하지만 시드키야 11년에 있었던 3차 침입, 즉 완전한 멸망은 B.C. 587/586년이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포로회복 때까지는 50년이다. 길다면 긴 기간이지만 이는 유다의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통치 기간(55년, 대하 33:1)보다 짧다. 그들이 이방인의 압제를 고통스러워했던 기간보다 하나님께서 거절당했던 기간이 훨씬 길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거절당했던 기간은 므낫세의 통치 때뿐만이 아니다. 훨씬 더 많은 기간 동안 하나님께선 거절당하셨고, 그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는 우상들로 채워졌었다(32:30). 심지어 그들은 성전 안에도 우상의 제단을 놓았었고(32:34),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의 바알 숭배와 몰록에게 드린 인신 제사(32:35) 등 수많은 가증함들을 행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회복시키겠다 하시며, 땅의 거래라는 확실한 표적을 주신 것이다.

  이 모든 것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레미야는 『주께서는 주의 큰 권능과 펴신 팔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으니 주께는 어려워서 못 하실 일이 없나이다.』(32:17)라는 말로 간구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도 『보라, 나는 주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있겠느냐?』(27절)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신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그분의 능력은 이집트에서 강하신 손과 펴신 팔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오신 것이다(20-22절).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그 백성을 바빌론으로부터 이끌어 오실 것이며, 먼 훗날 대환란으로부터도 구원해 주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능력은 오늘날 그분의 성도들인 우리를 위해서도 나타난다. 그분을 신뢰하는 백성에게 주께 너무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2. 다윗 왕국에 대한 영원한 언약(33장)



  하나님의 능력은 33장에서도 나타난다. 『나를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33:3). 이 약속은 위기에 처해 있는 모든 성도에게 효과적인 약속이다. 주께서는 성도를 도우시되,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이끌기도 하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들은 그 오묘한 방법으로 성도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놀라움으로 감사를 드리게 된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 부르짖으라는 말은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의 구출을 위한 개인적인 간구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간구는 민족적인 간구다. 이미 심판이 주어진 상태에서 그 간구는 어서 속히 이 심판의 기간이 끝나고 하나님의 얼굴빛으로 구원해 달라는 간구다. 이 간구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회복하실 것이다. 『보라, 내가 이 성읍에 건강과 치유를 가져오고 또 내가 그들을 치유하며 그들에게 화평과 진리의 풍성함을 나타내리라』(33:6).

  하나님께서는 사로잡혀간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7절).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용서하실 것이다(8절). 예루살렘은 이방인들 앞에서 영예를 얻을 것이다(9절). 예루살렘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기뻐하는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10-11절). 이스라엘 곳곳에 양무리들로 풍성하게 될 것이다(12-13절).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약속하신 "좋은 일"(14절)들이다. 이 모든 좋은 일들을 위해 그들은 주를 "불러야"(3절) 한다.

  이 모든 "좋은 일"들 중 본문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다윗의 보좌에 대한 언약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다윗에게 『네 날들이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몸에서 나올, 곧 네 뒤에 올 네 씨를 세우고, 내가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하리라...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세워지리라. 네 보좌가 영원히 세워지리라.』(삼하 7:12,16)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다윗의 언약"이라 한다. 이 언약은 궁극적으로 왕국을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인데, 그분은 왕국을 세우심에 있어서 다윗의 보좌를 차지하실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로 불려지신다.

  그런데 이 왕국의 보좌는 "영원한" 보좌이다. 여기 예레미야의 예언에서도, 낮과 밤의 언약이 깨질 수 있다면 그제서야 다윗의 언약도 깨어진다 말씀하신다(33:20-21). 즉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낮과 밤의 법칙을 예로 들면서 영원한 언약임을 강조한 것은 31:35-36에서도 있었다. 거기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한 그분의 백성으로 삼는다는 말씀이었으며, 여기 33장에서는 다윗의 보좌를 영원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앞에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그 민족적 언약이 강조되었다면, 여기서는 다윗과 맺은 통치의 언약이 강조된 것이다.

  한편 15절에서 "가지"(Branch)라는 말을 주목하라.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적 이름으로서, 구약에 몇 번 등장한다. 그 중 이사야 11:1, 예레미야 23:5; 33:15에서는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사역을 강조하고, 스카랴 3:8에서는 종으로서의 사역, 스카랴 6:12에서는 인자로서의 사역, 그리고 이사야 4:2-4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을 강조한다. 또한 이 네 사역은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다루는 네 복음서와 잘 들어맞는다.

  어쨌든 다윗의 왕권이 강조되는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루는 상황이다. 하지만 에스라나 느헤미야 그 어디를 보아도 유다가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다윗의 왕권이 회복되었다는 말은 없다. 당시 스룹바벨이 유다의 포로들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그는 왕이 아니었으며, 유다 역시 독립 국가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일개 지방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로 이스라엘은 결코 다윗의 후손 중 왕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 "회복"에 대한 예언은 단순히 B.C. 536년에 있었던 포로 회복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적용되며, 그때 주님께서는 영원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 역시 특별한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는데, 그것은 『주 우리의 의』이다(16절). 이와 비슷하게, 에스겔 48:35에서는 『주께서 거기 계시다.』라고 불리게 된다. 이 두 이름은 히브리어로 각각 "여호와 치드케누"와 "여호와 삼마"라는 말인데, 그러니까 이 성읍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일찍이 주께서 그분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도성이다(왕상 14:21, 대하 12:13). 그만큼 예루살렘은 주님의 영원한 도성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교회가 거할 새 예루살렘만 강조하고 지상의 예루살렘은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상의 예루살렘은 완전히 버리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하고 있으며, 그 도성이 복되다 말씀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도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번성하리로다.』(시 122:6)라고 말씀하신다. 이 예루살렘이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라면 왜 그 화평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겠는가? 새 예루살렘이 언제 한 번이라도 고난을 겪은 적이 있었는가? 하지만 지상의 예루살렘은 그것이 생긴 이래로 꾸준하게 고난을 겪고 있다. 신구약 모두에서, 교회사 기간에도 꾸준히, 오늘날까지 그 도성은 고난을 겪고 있다. 앞으로 대환란 때에 그 고난이 극대화될 것이다. 따라서 주의 성도들은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하늘의 백성"인 교회를 위한 도성이라면, 땅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땅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한 도성이다. 이 두 백성과 두 도성을 잘 구분해야 한다.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 예수께서 친히 그곳의 빛이 되시지만, 땅의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영영토록 그분의 이름을 두시는 곳이다.



3. 언약을 경시하는 유다의 고관들(34장)



  3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언약을 낮과 밤의 법칙을 들면서 확실히 세워 주셨다. 반면 34장에는 언약을 그리도 경시하는 유다의 고관들이 나온다. 8-11절에 보면, 시드키야왕이 백성들에게 한 언약을 맺는다. 그 언약은 히브리인 남종과 여종에게 자유를 선포해 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노예해방령"이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 동족들을 노예로 삼지 말라 하셨고, 일시적인 종으로 삼는다 해도 7년이 되면 면제해 주라고 말씀하셨었다(출 21:2). 어쨌거나 시드키야는 해방령을 내렸고, 고관들 역시 그 언약에 동참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들은 그 언약을 깨고 놓아주었던 자들을 다시 종들로 삼았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이스라엘의 불충함이 얼마나 대조되는지를 보게 된다. 이스라엘은 백성들 간의 언약을 가벼이 여긴다. 그처럼 언약을 경시하는 마음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경시해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셨다. 하지만 그들이 자유케 한 자들을 다시 종으로 삼았듯이,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자유로운 이스라엘을 다시 바빌론의 종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18절에는 『그들이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송아지를 나눈 사이로 지나갈 때...』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언약을 체결하는 의식이다. 제단에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언약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5:10,17에서 아브라함이 동물들을 쪼개 놓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이로 지나가시면서, 카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신다는 "언약"을 말씀하신 것과 유사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언약을 체결하신 후 신실하게 지키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떠한 언약이라도 가볍게 여겼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송아지 사이를 지나간 사람들, 즉 거짓되이 언약을 맺은 사람들을 바빌론에 무자비하게 넘겨 버리신다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신실하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약속을 잘 지킨다는 의미가 강하다. 우리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것은 그분이 말씀하신 언약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약속을 어기는 자들은 신실하지 못하여 신뢰감이 떨어진다. 이스라엘은 분명 그랬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언약을 세워 주시고, 그것도 영원히 세워 주시어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신실하신가? 특히 신약 성도인 우리에게는 행위와 관계 없이 오직 은혜에 의해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영원토록 지키신다. 우리의 불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실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얼마나 위대하신가? 그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그분께 다시 한 번 영광을 돌려드려야 할 것이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1년 1월  (통권 226 호)   page :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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