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 선택 (4) : 자칭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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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8-9 『스머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처음과 마지막이요, 죽었으나 살아 계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성경은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유대인인 것처럼 속이는 자들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한다. 극단적 칼빈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유대인과 교회(거듭난 그리스도인들)를 혼동하여, 하나님께서 나누신 것을 섞어버리는 것이다(고전 10:32). 그 결과 사람들은,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는 “TULIP”이라는 이상한 교리를 가장 성경적인 교리로 여기게 되었다. 거듭나지 않은 수많은 ‘기독교인’(‘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과 성경을 올바로 공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딤후 2:15)은 이처럼 어렵고 혼란스러운 극단적 칼빈주의에 의해 미혹당하고 만다.



  성경에서 “선택된 백성”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계획들과 교리들을 이 시대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교리적으로 적용하려니까 극단적 칼빈주의가 나온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이 오해한 대표적인 부분은 로마서 9-11장인데, 그 부분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부분임에 주의해야 한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선택하셨던 자들을 어떻게 거부하실 수 있는가이다. 이 세 개의 장을 통해 유대 백성의 구원에 대한 커다란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롬 9:1-3; 10:1-3; 11:12-14), 일부의 사람들만이 무조건적으로 선택받았다고 믿는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의 눈에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매우 어리석게 비쳐질 것이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무조건적인 선택이라는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유대인에게 주어진 말씀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1. 로마서 9:10-13



  이스라엘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신 7:7, 왕상 3:8, 시 135:4, 사 45:4). 로마서 9:10-13은 이렇게 말한다. 『그뿐 아니라 리브카도 한 사람, 곧 우리 조상 이삭에 의하여 잉태하였는데 (아직 자식들이 나지도 아니하였고 또한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하였을 때에,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부르심에 있게 하시려고)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고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 함과 같으니라』(롬 9:10-13).



  이 구절은 칼빈주의자들이 “선택”과 “버림받음”이라는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빈번히 사용하는 본문이다. 호크세마(Hoeksema)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적인 해석을 덧붙여 이 구절을 “야곱은 내가 영원히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에서는 나의 주권적인 미움의 대상으로 영원히 거부한다.”로 읽는다. 이것이 칼빈주의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말하는 “택하심을 따른 하나님의 목적”(롬 9:11)은 개인적인 구원이나 저버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칼빈주의자들은 본문(롬 9:10-13)을 해석하는 데 세 가지 중요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비단 이 구절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이 구절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 선택이 아니었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은 문맥을 보지도 않고 “이 선택은 세상의 기초 이전에 이루어졌다.”라고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그러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세기 24장을 살펴보면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롬 9:11) 즉 “나이든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4:23, 롬 9:12)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리브카의 태 안에 있을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세상의 기초 이전에”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은 십중팔구 성경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들의 주장만을 되풀이할 따름이다. 본문은 말라키를 인용한 것인데 말라키 1:2-3의 인용구는 에서와 야곱이 죽은 몇 백년 후에 기록되었다. 창세기는 이 사건에 대해서 예언적인 서술을 한 것이고, 말라키는 이 사건에 대해서 역사적인 서술을 한 것인데, 하나님의 선택과 버리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선택이 아니라 조건적인 선택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하나님은 영원한 과거부터 에서를 미워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신다는 것은 수백년 동안 에서의 후손들을 관찰하신 후 에돔 민족을 미워하신다는 말이다.

  둘째, 본문은 결코 에서와 야곱이라는 개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미리 정하심’은 성경적인 교리이지만, 결코 개개인의 구원과 멸망에 대한 ‘미리 정하심’이 아니다. 개인에 대한 예정론은 성경 어디에도 없으며 <기독교 강요>에서나 발견될 뿐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개인이 아닌 민족을 말하는 것이다. 즉 “두 민족”, “두 백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에서는 개인적으로 결코 야곱을 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개인에 관한 것이라고 우긴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죄를 짓는 것이다. 개인의 행적에 대해 성경을 보면 오히려 야곱이 에서에게 머리 숙였으며(창 33:3) 그를 주라 불렀고(창 33:8) 자신을 그의 종이라고 말했으며(창 33:5) 그에게 선물을 바쳤다(창 33:3)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야곱이 죽은 후 ‘야곱’이란 이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야곱의 생애의 어떤 사건을 자세히 이야기할 때 외에는 항상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에서도 에돔 민족의 조상이 되었으므로, 에서를 말하면서 에돔 민족을 가리킨 것이다.

  셋째, 본문은 구원이나 멸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 -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메시야의 계열과 관련이 있다.

  만일 야곱과 에서의 자손들의 영적 상태가 그들과 같다면 그들의 모든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에 따라서 각각 구원받거나 멸망당할 것이다.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 족속이 모두 멸망하였는가의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야곱의 후손들은 모두 구원받았는가? 다단, 코라, 아비람은 하나님께서 땅을 열고 끝없는 구덩이로 던지셨으며(민 16:31-33),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는 하나님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살라버렸다(레 10:1-2). 야곱의 모든 자손들이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구원과 전혀 관련없는 구절들을 억지로 구원과 연관시켜 해석하다 보니 성경이 어려워지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렇게 허공에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2. 로마서 9:17-18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 또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그 분께서는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 원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7-18).



  호크세마(Hoeksema)는 여기서도 “파라오도 에서처럼 영원 전부터 주권적으로 미움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라오의 경우가 수백만의 버림받은 사람들의 저주를 대변하고 있는가?

  핑크(Pink)는 그렇다고 말한다. “파라오의 경우는 버림받음의 교리에 대한 기준과 예시를 잘 보여준다. 만일 하나님에 의해 실제로 파라오가 버림받았다면 우리는 그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미리 정해지지 않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버림받은 것으로 알아야 한다.”

  만일 파라오가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우리는 적어도 칼빈주의적 관점에 따라 아무도 버림받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아무도 구원받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도록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버림받은 자”들이다. 물론 무조건적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그 분을 영접하는 것은 아니다. 파라오가 세워지고 완악하게 된 목적은 파라오의 영원한 운명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은 성경이 증명할 뿐 아니라 칼빈주의자들도 분명히 인정한다. 파라오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기 위한 것이지 주권적인 영원한 판결에 의해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그들을 구원하신 주임을 입증하시고(출 6:6-7; 10:1-2; 13:14-16) 파라오에게도 자신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며(출 9:14) 이집트인들에게 자신이 주임을 보이시고(출 7:5; 14:4,18) 온 땅에 그분의 이름이 선포되게 하실 목적이었다(출 9:16). 그 목적은 이스라엘과(출 14:31) 파라오의 이집트인들과(출 14:17-18,25) 온 땅에(사 52:10-11, 삼상 4:7-8)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벌카워(Bevkouwer)는 온통 “TULIP”만 가득한 호크세마나 핑크와는 달리 눈을 뜨고 이야기한다. “바울은 파라오의 개인적 운명에 우리가 관심을 갖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구원에서 그의 위치를 보여 주고자 그를 언급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완악하게 하신다고 말하는 여러 경우들을 보았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 완악하게 된 것(사 63:17)만 보아도 그들 중 아무도 영원한 판결이나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를 다루시기 전, 모세에게 가라고 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그의 미리아심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내가 확실히 아노니, 어떤 강력한 손으로도 이집트 왕이 너희를 결코 가게 하지 아니할 것이나』(출 3:19)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셨던 이유는 모세가 파라오를 처음 만났을 때 분명해지는데, 파라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말을 하였다. 『나는 주를 알지 못하며...』(출 5:2). 파라오의 이처럼 완악한 마음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파라오를 완악하게 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출 4:21; 7:3). 그래서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완악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다(출 7:13; 9:12; 10:1,20,27; 14:8). 동시에 파라오 또한 그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고 말한다(출 7:22; 9:35). 이 완악함에 대해 주의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 그것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개인적인 구원을 받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가게 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출 4:21; 7:3-4; 10:1,20,27; 14:8). 만약 저버림의 판결이 영원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미 지옥으로 예정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3. 로마서 9:20-23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으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말할 수 있겠느냐? 토기장이가 같은 흙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나타내시고 또 그의 능력을 알게 하시려고 멸하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을 심히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시며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된 자비의 그릇들에 대해서 그의 영광의 풍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으니』(롬 9:20-23).



  칼빈주의 진영 안에서 로마서 9장의 야곱과 에서의 해석에 관해 분쟁이 있었다. 파라오에 관해서는 훨씬 더 많은 분열이 있었고, 이 본문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이 배를 버리고 떠났다. 많은 이탈자들이 있었으나 ‘TULIP’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으니, 호크세마와 핑크가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호크세마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영광과 저주를 주권적으로 예비하셨을 때 그 분은 사람의 도덕적 성품을 침해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이 귀히 쓰임받는 그릇으로 섬기든 천히 쓰임받는 그릇으로 섬기든 간에,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그분의 결정은 사람의 선택이나 포기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유롭고 주권적이시다.”라고 한다. 핑크도 곧잘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비선택자들을 그분의 미리 정하신 판결에 의해 멸망으로 맞추어 놓으셨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조차 서로 모순되며 서로의 주장을 반박한다. 호크세마는 진흙이 타락한 인류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 반면 핑크는 그렇다고 말한다. 사실 토기장이와 진흙은 구약에서 흔히 쓰이는 예화인데(사 29:16; 45:9; 64:8, 렘 18:1-6), 이 구절은 어떤 사람의 구원에 관한 언급이 아니다. 여기서 진흙은 이스라엘을 나타낸다(사 64:8, 겔 18:6). 알다시피 진흙은 그것으로 형태를 만드는 것이지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세상의 기초 이전”에는 어떠한 진흙도 없었다. 그릇들은 진노(롬 2:5)나 자비(롬 9;15)로 여겨져 왔다. 그것들은 귀히 쓰임받든 천히 쓰임받든(딤후 2:20)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예를 가져온다(출 14:4).

  하나님께서는 결코 개개인을 영예스럽게 또는 불영예스럽게 하시지 않으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늘이나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만든 진흙 덩어리인가?

  저명한 칼빈주의자 핫지(Hodge)의 대답을 들어보자.

  핫지 :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벌주시기 위해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리를 오해한 것이나, 그분이 자신의 선하신 즐거움에 따라 죄인들을 다루신다는 것은 그분의 권리를 옳게 말한 것이다.”

  진노의 그릇들은 세상의 기초 이전에 멸망당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는가? 칼빈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어떠한가?

  머레이(Murray) : “중요한 요점은 진노의 그릇에 주어진 멸망이 그들의 이전 상태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의 현재 생활이 그들에게 주어진 멸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핫지 : “이것은 타락전 선택론적 입장에서 이해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멸망시키기 위해 창조하지 않으신다.”



  진노의 그릇들이 개인적으로 “버림받은 자”인가? 한 번 더 우리의 대답을 대신할 칼빈주의자들의 대답을 들어보자.

  머레이(Murray) :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그들의 불신앙을 참으시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보여주고 있다.”

  벌카워(Berkouwer) : “바울은 여기서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에 대한 그의 진노를 보여주길 원하셨듯이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은 그의 위엄과 영광을 보여주신다. 이것은 개인의 운명에 대한 설명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역사의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보여 준다.”



  로마서 9장을 타락 전 선택론적 입장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TULIP’ 체계 전체를 파괴시킨다. 이것이 그토록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나는 이유이다.

  우리는 본문에서 로마서 9장의 다른 곳에서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무리들이 성경을 어렵고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천한 그릇은 그리스도의 피를 범했기 때문에(마 27:25) 멸망으로 정해진 유대인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임한 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살전 2:16). 그러나 이것은 유대 민족을 전체적으로 언급한 것이지, 개개인 모두가 지옥에 간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의 주제를 구원으로 축소시킨 칼빈주의자들의 한계가 여기서 다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이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용서함 받았기 때문에(눅 23:34) “자비의 그릇”(딤전 1:13,16)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진노의 그릇들(요 3:36)이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자비를 베푸신다(롬 11:30-33, 벧전 2:10). 이것이 복음이며 성경적인 진리이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년 1월호  (통권 46 호)   page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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