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총장의 평신도 신학 강좌?
조회 : 656
크게 작게 크기저장 초기값
사람이 무엇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말하고 그 지식이 그 사람의 기준이 되며 그것으로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잘못된 지식으로 오류를 만들어내면 자신은 물론이고 그것을 배운 사람들 또한 거짓을 참으로 알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학자들은 많은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교수에게 배우는 학생은 자신이 배운 것 위에 권위를 두게 된다. 자신이 배운 학문이 틀린지 맞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배운 대로 시험지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수나 목사라면 학생의 입장에서 참으로 커다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다른 학문은 조금 틀렸다 해도 다시 수정할 수 있다. 16세기 이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가 둥그렇게 공간에 매달려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지만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롬버스가 지구를 횡단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의 학자들도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로 증명되면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고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고, 특히 신학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이 신학자들이 왜 이상한 사람들인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성경에 없는 것을 가르쳐 오류를 퍼뜨린다. 성경에 확실하게 기록된 것을 믿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이 배운 것을 가르치면서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을 무시하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그것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는 신학자들도 이상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는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생산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에 대하여 관대하고 침묵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장영일 총장은 구약학 교수요 목사다. 장 총장은 국민일보의 평신도 신학강좌를 통해 성경 인물 탐구를 연재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장 총장은 성경이 아니라 학자들을 통해 성경 지식을 아는 것 같다. 성경학자라면 성경을 통해 지식을 늘리고 가르쳐야 한다. 성경에 없는 것을 분명하다고 주장하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국민일보 10월 8일자에 쓴 칼렙에 대한 탐구는 정말 '갈렙'(개, dog)이 웃을 일이다. 짧은 글이지만 칼렙에 관한 장 총장의 몇 가지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1. 장 총장은 칼렙의 이름과 비교하여 성경학자들이 그에게 준 칭찬과 별명을 부러워하며 『영원한 2인자, 열정 인생, 서번트 리더십, 팀워크의 달인, 긍정적 사고의 주인공, 온전한 순종과 겸손의 모델, 코람데오 등』이라고 칼렙에 대해 설명했는데, 칼렙은 영원한 2인자가 아니며, 그에게는 "팀워크의 달인, 긍정적 사고의 주인공"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칼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른 사람으로서 지도자 모세에게는 물론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내 종 칼렙은 그에게 다른 영이 있어 나를 온전히 따랐으니, 그가 갔던 그 땅으로 내가 그를 데려가서 그의 씨가 그 땅을 소유하게 하리라』(민 14:24). 칼렙은 적을 두려워하여 적과 싸우기보다는 자신들의 지도자를 대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돌로 맞을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당장 올라가서 그것을 차지하자. 이는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음이라."고 말하며 주께서 함께하시는 것과 주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라고 회중 앞에 선 사람이었다. 칼렙은 강한 적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은 온전한 사람이었다.



  2. 칼렙의 등장에 대하여 장 총장은 『갈렙은 가나안을 탐지한 12명의 정탐꾼 일화에서 여호수아와 함께 등장한다.』라고 했다. 일화(逸話)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흥미 있는 이야기. 일화 한 토막, 숨은 일화를 공개하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일화를 모아 놓은 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록한 역사서이며,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예언 위에 신앙의 토대를 세운다. 성경은 가장 오래된 책이고, 가장 많이 팔린 책이며, 성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무서운 책이다. 이런 성경의 중요한 인물인 여호수아나 칼렙이 일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면 누가 성경을 믿고 생명을 바쳐 자신의 신앙을 지키겠는가?



  3. 칼렙의 지도력에 대하여 장 총장은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열등감 극복에 성공한 그를 오히려 높게 평가한다. 특히 모세가 여호수아를 능가하는 갈렙의 지도력(민 14:24,30)을 알고도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했을 때 이를 수용하고 기꺼이 2인자가 된 갈렙의 겸손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칼렙보다 앞서서 모세와 함께하며 따랐던 모세의 종이었다.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명령으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이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돌판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을 때 제일 가까이 동행한 모세의 일꾼이었다(출 24:13).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을 보고 일을 시키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꾼을 부르실 때 하나님의 은사와 기준에 따라 부르시며 그 부르심은 후회가 없으시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죽을 네 날들이 가까우니 여호수아를 부르고, 너도 회중의 성막으로 나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하시어 모세와 여호수아가 가서 회중의 성막에 나오니, 주께서 구름 기둥으로 성막에 나타나시고 그 구름 기둥이 성막 문 위에 머물렀더라』(신 31:14,15). 그 뒤로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건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신 31:23).

  세간의 말하기 좋아하는 심리학자들의 생각처럼 칼렙은 열등감에 빠져서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전혀 없다. 칼렙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부르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나 한 것처럼 말하는 심리학자들은 성도들의 선생이 될 수 없는 자들이다.



  4. 칼렙의 출신에 대하여 장 총장은 『또한 그는 본래 이방 민족, 즉 에돔족의 그나스(그니스) 가문 출신으로(민 32:12, 수 14:14, 창 15:19; 36:11,15) 어떤 동기에서 이스라엘에 귀화한 것이 분명하다.』라고 했다.

  창세기 15:19에 "크니스인"(Kenizzites)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 나오는데, 아브람에게 주실 카나안 지역을 포함한 약속의 땅에 이미 거주하고 있었던 이방 민족의 이름이다. (히브리어로 "크니스"란 "사냥, 사냥꾼" 등의 의미가 있다.) 반면 창세기 36:11,15에 나오는 "크나스"(Kenaz)는 에서의 장자 엘리파스의 아들로, 에돔(에서)의 족장들 중의 하나였다(대상 1:35,36). 에서는 카나안의 여인들 중에서 여러 아내들을 얻었는데, "크나스"의 아버지 엘리파스를 낳은 에서의 아내 아다는 "힛인"이었지(창 36:4,5) "크니스인"(창 15:19)이 아니었다. 또 엘리파스가 "크니스인"의 여자를 아내로 얻었다는 기록은 창세기 36장과 역대기상 1장 등 관련 구절들에 전혀 없다. 단지 에서의 손자인 "크나스"(사냥, 사냥꾼이라는 의미)는 "사냥"을 좋아한 "사냥꾼"이었던 그의 할아버지 에서와 에서의 장자이며 그의 아버지인 엘리파스에 의해 충분히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이다. 따라서 "크나스"는 단지 에돔의 한 족장이기 때문에(창 36:11,15) 창세기 15:19의 카나안 토착 이방 민족인 "크니스인"과는 분명히 다르다. 또 창세기 15장과 36장은 약 130년의 간격이 있다. 그런데도 장 총장이 창세기 15장의 "크니스인"과 창세기 36장의 "크나스"를 같은 이방 민족의 가문으로 주장하는 것은 소위 학자로서 매우 경솔한 처사이며 큰 오류를 유포시키는 행위이다.

  또 장 총장은 『크네스인 여푼네의 아들 칼렙』(민 32:12, 수 14:14)이 이방 민족인 에돔족의 크나스 가문 출신으로 귀화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으나, 이것도 오류이다. 앞에서 이미 "크니스인"과 "크나스"를 같은 가문으로 가르친 오류 때문에 이 설명도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에서의 손자 "크나스"는 독립적인 이방 민족이라는 뜻을 지닌 "크나스인"으로 불린 적이 전혀 없다. 단지 에서(에돔)의 족장들 중의 하나로 그의 이름인 "크나스"로만 불렸을 뿐이다. 물론 야곱의 열두 명의 아들들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열거된 역대기상 2-8장까지의 말씀 중에서 칼렙이 속한 유다 지파의 자손들에 관한 말씀을 보면(대상 2:3-4:43), 유다가 "카나안 여인 수아"를 아내로 얻어 자녀들을 낳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에(대상 2:3) 유다 지파에 카나안 지역의 한 이방 민족 혈통이 모계를 통해 유입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유다 자손들 중에 다른 "이방 민족의 여인들"과의 혼인을 통해 자녀들을 낳은 기록이 있기에(대상 4:18,10) 유다의 혈통을 받은 유다 자손으로 유다 지파에 속하지만 동시에 모계를 통해 이방 민족의 피를 받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칼렙은 이방 민족의 혈통이 모계로 유입된 이후 적어도 2,3세대에 해당되는 유다의 혈통으로 태어난 유다 자손이다. 이는 성경이 칼렙을 여푼네와 같이 "크네스인"으로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다의 혈통을 받은 유다 자손인 칼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로 선출될 만큼 온전한 유다 사람이었다. 따라서 칼렙이 자신의 당대에 귀화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장 총장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장 총장의 신학강좌에 나타난 제일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칼렙이 유다 지파임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칼렙에 대한 그의 주장이 틀릴 수밖에 없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다. 성경에서 칼렙이 처음 나오는 장면은 카데스바네아에서 그들의 조상들의 각 지파 중에서 고관 한 사람씩을 정탐꾼으로 보낼 때다(민 13:2). 『유다 지파에서는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요』(민 13:6). 칼렙, 그는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의 아들이 분명하다. 유다 지파의 대표로 보내진 고관이다. 그는 이집트에서 나온 후 시내 광야에서 각 남자의 수를 계수할 때, 이십 세 이상으로 싸우러 나갈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 이름들의 수대로 계수할 때 유다 지파의 칠만 사천육백 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민 1:2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이름을 알고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갈 때 그 숫자까지 정해 주시며 한 민족을 멸망시키는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한 사람도 부족하지 않게 지키시는 분이시다. 민수기 26장에서 여리코 근처 요단 옆 모압 평지에서 새 세대가 계수될 때, 시내 광야에서 계수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니, 광야에서 다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칼렙을 기억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더라.』 칼렙은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의 유일한 생존자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카나안에 들어가 유업으로 땅을 나눌 때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서는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요,』라고 그 이름을 불러 주셨다.

  성경에서 칼렙의 이름이 수십 번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칼렙을 언급하실 때 제일 먼저 『유다 지파에서는... 칼렙』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칼렙이 유다 지파의 대표임을 중요하게 쓰셨고(민 13:6), 그 다음은 『여푼네의 아들 칼렙』(민 13:6)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크네스인 여푼네의 아들 칼렙』이라는 표현은 혈통을 언급할 필요에 의해 단지 세 번만, 그것도 "크네스인 여푼네"라고 기록한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도 장 총장은 하나님께서 집중하신 칼렙의 중요한 모습에는 눈감은 채 가장 하찮은 문제를 부각시켜 칼렙을 왜곡되게 가르쳤으니 정말 '갈렙'(개)이 웃을 일이 아닌가!

  신학자들이 오류를 퍼뜨리면서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말이 다 틀린 것이 아니라 맞는 것도 일부분 있기 때문이다. 오류를 지적하면 "다 틀린 것도 아니니 많은 것 중에 한두 개 틀린 것이 있다고 모든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고 변명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틀린 것을 인간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오히려 바로잡아 주려는 사람을 부정적인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무엇이, 왜, 어디가 틀렸는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이 서로 잘못된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양심을 속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 말로 된 성경을 주셨으면 그 성경을 자신의 최종권위로 삼아야 한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된 것을 모른 척하거나, 감춰진 것을 들춰내어 무슨 비밀이나 아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께 속은 것이다. 그들은 거듭나지 못했거나 너무 육신적이어서 성령이 소멸되어 성경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성령께서는 먼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성경대로 그 말씀을 믿지 않으면, 성령께서 그 말씀을 가르쳐 주시지 않는데 그 사람은 다른 영으로부터 배움을 받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바른 성경이 없이 변개된 성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한지도 모른다. 무지하다는 것은 학식이 없거나 완력을 쓰거나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대하여 성령님의 조명을 받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믿거나 일을 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끝으로 칼렙이 자신의 이름 때문에 비하되고 무시당하여 엄청난 모멸감과 분노를 느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소설 같은 강좌는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다. 이왕 가르치려면 누구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가르치지 말고 "성경을 상고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공부를 해야 한다. 짧은 글을 쓰더라도 배운 값을 해야 할 것이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2월  (통권 225 호)   page : 38

 
   
 

 
고객센터 |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상호명: 말씀보존학회 │ 대표자명: 이송오 │ 주소: 서울특별시 강서구 금낭화로 135 (금강프라자 7층)
  • 사업자 등록번호: 105-99-34323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제 16-1956호 │ 메일: admin@biblemaster.co.kr
  • 전화 : (02)2665-3743~4 │ 팩스: (02)2665-3302
Copyright ⓒ www.biblemaster.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