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생명을 전하지 못한 옥한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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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돈은 많은데 할 일은 없고 그래서 멸망할 세상을 섬기는 데 발벗고 나선 한국 교회의 큰 명절일 뿐 아니라, 이 악한 현 세상의 눈에조차 거슬리는 일을 많이 저질러 그들에게 굽실대고 있는 교회들의 거대한 움직임이기에 세상 역시 뭔가 하고 기웃거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금년 부활절에는 세상 신문인 조선일보 기자가 옥한흠 원로목사(사랑의교회)를 찾아가 부활절과 관련하여 인터뷰한 내용이 4월 2일자 종교란에 대서특필되었다. 세상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교회가 얼마나 세상과 깊숙이 타협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세상이 진리가 무엇인 줄 알아서 옥목사의 말을 큰 글자로 실어 주었겠는가? 그의 말은 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세상이 그것을 듣고 인정해 준 것 아니겠는가? 부활절, 곧 이스터(Easter; 행 12:4)는 님롯의 아내 세미라미스가 여신화된 하늘의 여왕(렘 44:17-19) 이쉬타르(Ishtar)를 섬기는 명절이다. 세미라미스의 아들인 탐무스(겔 8:14)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바빌론 명절인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장해 카톨릭에 의해서 기독교 내로 침투한 것이다. 바로 이 바빌론의 부활절을 즈음하여 옥목사에게 세상 기자가 찾아간 것이다. 



  먼저 기자는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부활의 의미는 왜 중요한가요?"라고 물었다. 옥목사는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인의 자존심 그 자체"라면서 "부활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아도, 성경 말씀대로 살면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은 것입니다... 저는 요즘 사도신경의...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라는 구절을 수시로 암송기도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옥목사가 보는 개역성경으로는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말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변개된 성경대로 사는 것은 종교의 옷을 입고서 세상과 똑같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개된 성경을 봄으로써 하나님의 기준에서 완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멀어져 있다면 그것이 곧 '세상'이다. 성경 말씀대로 산다고 할 때는 어떤 말씀을 보는가가 중요하다.

  옥목사는 부활과 영생에 관한 사도신경 끝부분을 수시로 암송기도한다고 했다. 그가 믿음의 기반을 둔 사도신경은 바빌론 종교가 신비적 형태를 취한(계 17:5) 이교도 카톨릭이 4세기에서 7세기경까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신조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예배용 주문(呪文)이다. 정립된 시기를 보더라도 주님의 사도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도적 권위를 계승했다는 자칭 사도들, 즉 『거짓말쟁이들』(계 2:2)이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사악한 이교도 교리에 기독교의 탈을 씌운 것이다. 마귀를 섬기는 자들의 주문을 예배 때마다 헛되이 반복하는 것도 실로 마귀적인 것이거늘(마 6:7), 바빌론의 부활절에 맞춰 바빌론 종교의 신조를 수시로 암송기도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증한 일인가?

  카톨릭이 만들어낸 사도신경에서 '몸이 다시 사는 것'이란 성경에 따르면 "생명의 부활"이 아니라 "저주의 부활"이다. 주님은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고 하셨다. 저주의 부활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죄인들이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기 전에 큰 백보좌 심판석에 서기 위해 단 한 번 부활하는 것이다(단 7:10, 계 20:11,12). 그들도 부활하되 저주의 부활로 부활하며, 영원히 살되 영원한 불못에서 사는 것이다(계 20:14).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반복 암송하는 사도신경 이단들이 맞이할 것은 바로 이것뿐이다. "성경"에 따르면, 옥목사는 저주의 부활과 저주의 영생을 위해서 수시로 헛된 반복을 일삼은 꼴이 되었다. 이것이 양무리에게 성경을 가르친다는 목사의 모습인가? 그처럼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인도하며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인가? 

  기자는 '육신의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라며 다른 화두를 던졌다. 옥목사는 "성경을 읽어 봐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법정의 증인 자격도 없던 여성들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기독교가 2,000년을 이어왔겠습니까?"라고 했다.

  옥목사는 "성경을 읽어 봐도" 성경을 알 수 없는 부류에 속한다. 변개된 성경을 보는 그에게 성령님께서 조명을 주시지 않은 것이다. 목사라면 입을 열 때 진리를 말해야 하는데, 그의 입에서는 진리가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 답변에서는 성경적 상황 고려 없이 덮어놓고 이분법적 논리로 제자들과 여인들을 분리시켜 놓았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여인들이 부활을 믿고 증거하여 2천 년 기독교 역사가 이루어져 왔다고 했다. 이것이 옥목사를 통해 세상에 전달된 진리(?)였다.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믿지 않았던 단순간적 기간은 있었지만(막 16:11,13, 눅 24:11), 그렇다고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님은 그들을 부활의 증인들로 세우셨고(눅 24:46-48),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바로 사도행전이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자리를 대신하여 사도 직분을 감당할 사람을 뽑는 자리에서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했던가? 그 사람을 『우리와 함께 주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하리라.』(행 1:22)고 하였다. 옥목사의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은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도 믿지 않은 것을 이 사람들은 왜 믿는다고 법석을 떠는 것일까?'라며 그들이 혀를 차지 않았겠는가?



  기자는 '지난해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고, 지난달에는 법정 스님도 입적하셨습니다. 종교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원로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셨는데요.'라고 했다. 옥목사는 "종교는 달라도 참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좀더 버티고 계셨으면 우리 사회에 양지(陽地)가 더 넓어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이 가시고 나니 음지(陰地)가 더 다가오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낍니다."라고 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입을 벌릴수록 실체가 더 드러나는 법이다. 그의 말을 통해서 마음에 가득한 것들이 계속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오 독사들의 세대야, 악한 너희가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마 12:34).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악인의 죽음을 기뻐해서도 안 되지만(겔 33:11), 뭘 얻을 게 있다고 그들의 죽음을 아쉬워해서도 안 된다. 세상의 죄의 어두움을 짙게 했던 그들이 사라졌는데, 음지가 더 다가오는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들이 세상에서 빛이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너희가 한때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행하라』(엡 5:8). 옥목사의 논리는 그들 마귀의 종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옥목사는 구원받지 않은 종교인에 불과하므로 자신의 구원을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다.



  기자는 '우리 사회에도 어려운 이웃이 많지만, 북한의 수천만 동포들은 더욱 비참한 상황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옥목사는 "북한을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만, 저에게 북한은 신학적 수수께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힘듭니다. 하나님이 북한 사람들의 고통을 너무 오래 방치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고 선한 자를 구원하신다는 약속은 분명히 지켜질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북한 지하 교회의 교인들이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졌으면 하고 기도합니다."라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은 사탄에게 넘겨져 그의 통치 아래 있다(눅 4:6). 그래서 그가 원하는 자에게 그것들을 줄 수 있다. 이북의 김정일은 그 권세를 받았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지만(롬 13:1), 하나님의 허용하심 아래서 일어나는 이 세상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이념은 사탄이 관장하고 있다. 이북 공산주의는 인간을 사탄에게 종노릇하게 하려고 만든 사탄의 작품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탄의 종노릇하는 것이 어디 공산주의뿐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 모든 인간은 마귀의 종으로 살다가 지옥에 가게 된다. 주님을 섬기려면 마귀와 그가 통치하는 현 세상을 알아야 한다.

  북한의 오늘날 현실은 신학적 수수께끼가 아니다. 현 세상에서 악인이 지속되고 번성하는 것은 『그들의 종말』(시 73:17)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살다가 지옥의 영원한 멸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악인의 학정 아래서 신음하는 혼들은 어떠한가?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죄의 저주 아래 있는 세상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마 18:7, 딤후 3:13). 하나님께서 정말로 살아 계신다면 현 세상에 살인도 전쟁도 재앙도 없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복음을 거부하려고 꼬투리나 잡으려는 죄인들의 유치한 발상이다. 하나님께서 죄의 결과로 죄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롬 1:24) 그들 멋대로 살게 하신 이 저주받은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악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모든 악을 제거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사탄을 끝없는 구렁에 던져 놓고 친히 통치하셔야만 가능한 일이다(계 19,20장). 재림을 믿지 않기에 세상일에 대한 수심이 가득한 것이다.

  이북에는 지하 교회 성도들이 있다. 자유대한민국이라고 모든 국민이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북에서도 대다수가 믿지 않아도 믿는 소수가 존재하고 남한의 배교한 교회들보다 더 잘 믿고 있다. 진리는 늘 소수가 믿고 따르는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의 고난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영광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실 따름이다(롬 8:17). 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총칼로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무엇으로도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성경의 약속을 성취하고 계시는 중이다(롬 8:39).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북 지하 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불로 단련된 믿음으로 남한의 배부른 교회들의 헐벗은 믿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켰기에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된 반면(계 2:10), 남한 교회들에게는 주어질 면류관이 하나도 없다. 값싼 동정으로 이북을 걱정할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기자는 "목사님은 평생 제자훈련 목회에 힘써 오셨습니다. 제자훈련의 성과를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옥목사는 "제자훈련은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님을 닮아 작은 예수가 되겠다고 노력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안 믿는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들고, 믿는 사람은 예수처럼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것이 목표이지요."라고 했다. 옥목사는 '성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목표'만 대충 얼버무려 말했다. 그런 원론적 답변을 누가 못하는가? 기자가 묻는 것은 "제자훈련의 성과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옥목사의 중언부언은 제자훈련에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들만 비대해졌을 뿐 온갖 썩은 비리가 난무하는 한국 교회는 제자훈련의 열매이다. 바른 성경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마 28:19, 한글킹제임스성경)라고 되어 있는 것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변개시킨 개역성경을 근거로 했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육신의 종들이 된 한국 교회가 오늘날처럼 부패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직종으로 성범죄가 가장 많은 것이 "목사"라고 하지 않던가!

 

  마지막으로 기자는 '부활절을 맞아 국민에게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옥목사는 "죽음 대신 생명을 바라보고 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삽니다... 그러나 생명을 내다보는 패러다임을 가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하루하루 희망을 갖고 감사하며 열심히 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국민을 향한 옥목사의 "좋은 말씀"에는 복음이 없었다. 생명을 바라보라니 어떤 생명을 바라보라는 것인가? 이것이 세상과 타협한 목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씀"인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전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이가 인터뷰 내내 성경 한 구절 언급하지 않더니, 끝내는 복음 없이 마무리했다. 이유는 한 가지, 옥목사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생명이 생명을 낳는 법이다. 생명 없는 그의 말들은 생명 없는 4월 2일자 세상 기사들과 함께 어느 폐지 무더기 속에서 깊은 죽음의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5월  (통권 218호 호)   page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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