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권 밑에서 자행된 이탈리아의 박해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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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자행된 박해에 관한 기사를 다룰 것이다. 이탈리아는 로마카톨릭의 중심지요, 로마 교황의 근거지이며,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어 수천의 지성을 현혹시키고 미신과 편협의 구름으로 인간의 명철을 어둡게 한 다양한 오류들의 산실이다. 이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박해는 첫째, 교황의 즉결권에 의해, 둘째, 종교 재판소의 권력을 통해, 셋째, 성직자 무리의 특이한 명령에 선동되어, 넷째, 이탈리아 통치자들의 편협에 의해 저질러졌다. 교황권 밑에서 자행된 첫 박해들은 아드리안(Adrian)이라는 한 영국인이 교황의 자리에 앉아 있던 12세기에 시작되었다.



  학문에 조예가 깊은, 브레스키아(Brescia)의 뛰어난 웅변가 아놀드(Arnold)는 로마에 와서 교회 안으로 기어들어온 부패와 그릇된 혁신에 반대하여 순수하고 경건한 영으로 시원스럽고 담대하게 설교했다. 그러자 의원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교리를 높이 사게 되었다. 이에 화가 치밀어오른 교황 아드리안은 아놀드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로마를 떠날 것을 명령했다. 처음엔 의원들과 주요 인사들이 그를 편들고 나서며 교황의 권위에 맞섰지만, 이 때문에 아드리안이 로마 시에 성무 금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온 성직자들이 의원들과 시민들을 설득해 결국 아놀드는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독일로 국외 추방형을 언도받은 아놀드는 독일로 가서도 교황에 반대하여 설교하고 로마카톨릭의 온갖 오류들을 폭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드리안은 그를 피흘려 죽이기를 갈망하며 대여섯 번 수중에 넣으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자, 황제의 위엄을 지닐 때가 된 프레데릭 바바로사(Frederic Barbarossa)가 교황에게 교황의 손으로 그의 머리에 직접 왕관을 씌워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 아드리안은 그의 요구에 선뜻 응해 주면서 한 가지 요청을 했으니, 아놀드를 황제의 힘으로 자신의 수중에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황제는 그 불행한 설교자를 아주 흔쾌히 넘겨 주었다. 아드리안에게 넘겨진 아놀드는 아퓰리아(Apulia)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몸은 불태워져 재가 되었다. 이와 동일한 운명은 그의 오랜 친구들과 동료들에게도 찾아왔다.

  엔세나스(Encenas)라는 스페인 사람은 로마로 보내져 로마카톨릭 신앙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몇몇 개혁자들과 교제를 나누고 몇 편의 논문을 읽고서 그는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친척 중 하나가 그를 밀고했고, 교황과 추기경단의 지시로 화형에 처해졌다. 엔세나스의 남동생 역시 스페인어 신약성경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체포됐지만, 처형당할 시간이 이르기 전에 탈옥할 방도를 알아내어 독일로 도주했다.

  파니누스(Faninus)라는 학식 있는 성도는 교리에 관한 논쟁서들을 읽고서 개혁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역시 밀고를 당해 감옥에 넣어졌다. 갇혀 있는 그를 찾아간 가족과 친지들의 애걸로 한때 마음이 흔들리면서 믿음을 철회하고 풀려나오긴 했지만, 풀려나자마자 무겁기 짝 없는 죄책감의 쇠사슬들이 옥죄어 오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개종자들을 만들려는 일념 하나로 숨김없이 그리고 정력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주님을 증거했고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냈다. 그는 이 일로 또다시 수감되었지만, 이번에는 믿음을 철회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는 제안에 코웃음을 치면서 거절했다. 처형 당일 그의 모습은 눈에 띄게 즐거워 보였고, 목 졸려 죽임 당한 그의 몸은 불태워져 재가 되고 바람결에 이리저리 흩날렸다.

  도미니쿠스(Dominicus)라는 교양 있는 군인은 몇 권의 교리적 논쟁서들을 읽고서 열렬한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다. 퇴역하여 플라센시아(Placentia)에 갔을 때에는 적지 않은 회중을 모아 놓고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복음을 설교했다. 어느 날 그는 설교를 마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성도 여러분이 내일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다면, 여러분에게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혀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든 것까진 좋았으나, 도미니쿠스가 막 설교를 시작하려 할 때 시 행정관이 설교단에 올라와 그를 체포하여 감금시켜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체포에 기꺼이 순응한 그는 행정관과 함께 걸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마귀가 그토록 오랫동안 날 그냥 내버려 두었다니 거 참 기이한 일일세.” 끌려와 조사를 받을 때 “자신의 교리들을 철회할 텐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내 교리라고? 난 내 교리 같은 것은 없다. 내가 설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리들이며, 그것들을 위해서라면 내 피라도 다 빼 줄 것이고, 나의 구주를 위해 고난 받는 나 자신을 행복하게 여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믿음을 철회하고 로마 교회의 오류들을 껴안게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됐지만, 제아무리 달래보고 위협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사형을 언도받아 시장 바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갈레아시우스(Galeacius)라는 성 안젤로(St. Angelo) 성 근방에 거주하던 프로테스탄트 신사는 그의 믿음 때문에 체포되었다. 그의 친구들이 무진 애를 쓴 끝에 자신의 믿음을 철회하고 로마 교회가 전염시키는 미신적인 교리들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믿음을 철회했던 사실을 공개적으로 부인해 버렸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화형을 언도받았고 화형대에 사슬로 묶이게 되었다. 그들은 장작에 불을 붙이기 전 몇 시간 동안 그를 그 상태로 방치해 두었는데, 이는 그가 그를 둘러싼 아내와 친지들과 친구들의 설득에 못 이겨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갈레아시우스는 굳은 지조를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태우려고 준비된 장작에 제발 불을 붙여 달라며 형 집행인에게 간청하기까지 했다. 집행인은 마침내 그 일을 시행했다. 불길은 갈레아시우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는 듯 놀랍도록 빠르게 타올라 몇 분 만에 그의 감각을 앗아가 버렸고, 그는 타오르는 불길에 곧바로 소진되어 버렸다.

  이 신사가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그렇게 순교하면서도 믿음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참된 신앙에 대한 확실한 간증을 남겼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2년 4월  (통권 241 호)   page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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