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마일즈와 왈덴파 그리스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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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지 순례자들을 모슬렘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클레몬트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이 전쟁을 제창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결과는 오히려 교황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각 국왕들로 하여금 그 독재의 권위에서 벗어나도록 작용하였다. 성지 수호의 명분 아래 부와 명예를 기대하고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많은 제후들과 기사들은 1099년 처음 파병된 십자군 외에는 전부 실패하였던 것이다. 동방 문물과의 접촉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들(신본주의)보다도 이교도의 신이 주관하는 동방세계(인본주의)의 문화 수준이 더 높다는 사실에 눈뜨게 함으로써 교황의 독재적인 신적 권위에 대한 거부감을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국왕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하려 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의 맥을 계승한 반 카톨릭 그리스도인들의 끊임없는 반발 속에서 로마 교회는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해 가다가 결국 사데 기간의 끝에 이르러서는 종교개혁에 직면하고 만다.

사데 기간에도 여전히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먼저 보고마일즈(Bogomiles)를 살펴보자. 보고마일즈는 소아시아에서 나왔으며 불가리아로 이동하였는데 이들의 선진은 6,7세기 경에 같은 지역에서 나왔던 폴리시안즈(Paulic- ians)이다. 보고마일즈는 카톨릭의 “미사”가 사탄에게 경배하는 의식이고, 성경을 거부하는 “신부들”(Fathers)은 거짓 교사들이며, 카톨릭 체제는 사탄적이라고 주장했고, 무엇보다도 유아세례를 거부하였다. 이들은 북이태리에서는 카타리(Ca-thari)로, 남프랑스에서는 알비겐시즈 (Albigenses)로, 그리고 발칸지역에서는 불가리안즈(Bulgarians)로 불렸다.

마리아 숭배를 거부하고, 유아세례나 십자가,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등의 비성경적인 의식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로마 교회는 이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며 탄압하였다. 1022년 열다섯 명의 보고마일즈 그리스도인들이 심문을 받고 그 중 열세 명이 말뚝에 묶여 불에 태워졌다. 1145년에는 여덟 명의 형제와 세 명의 자매가 꼴로뉴에서 화형당하였다.

십자군 전쟁 기간에 유럽에는 4백만 가량의 카타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일찌기 노바티안즈, 도나티스츠, 그리고 파테리네즈 그리스도인들이 활동했던 남프랑스 지역에서는 카톨릭 신부들이 이들의 조소의 대상이었다. 카타리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경적인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가르쳤는데, 이것은 프란시스회, 도미니크회, 어거스틴회, 그리고 예수회의 선교사들이 중국, 일본, 인디아 등지에서 하는 사역들은 “참된 믿음”과 아무 관계가 없음을 뜻하기도 했다. 이 암흑시대에 카타리의 가르침은 두 가지의 기본적인 진리에 근거하였다. 첫째, 교황은 적그리스도이고(마 24장; 요일 4장; 요5:43), 둘째,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계시록 17장의 창녀라는 것이었다. 카타리(보고마일즈)는 신부들의 제의나 제단, 십자가를 부인하였으며 십자가는 짐승의 표라고 불렀고, 교황의 면죄(免罪)나 연옥의 교리 등을 일체 신뢰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또 유명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왈덴파(Waldenses)였다. 이들은 카톨릭 교회로부터 온전히 성별되어 살았는데 암흑시대의 가장 엄격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 역시 소아시아에서 발생하여 남프랑스로 이동하였고 더 나아가 삐에드몽, 오스트리아, 독일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교황 알렉산더 3세에게 노방에서 설교하게 해 달라고 청원하였고, 자신들이 구 라틴 역본에서 번역한 성경 사본 한 권을 그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청원은 거부되었고, 그들의 성경도 불태워 없애라는 지시가 내려졌으며, 80명의 설교자들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말뚝에 묶여 화형당하였다(1212).

왈덴파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행위의 모든 일에 대해서 성경을 최종권위로 인식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성경을 보급하였다.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를 거부하였고 그들을 무시하였다. 왈덴파 그리스도인들에 따르면 평신도도 성경을 설교할 수 있고, 모든 평신도는 거듭난 성인 그리스도인에게 침례를 베풀 수 있다(유아세례는 배격).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속사역으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보장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가르쳤다. 즉 이들은 루터나 칼빈이 태어나기 3백년 전에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이다.

왈덴파 그리스도인들은 서른여섯 번의 박해를 받았는데 몽포르의 시몬이 이끈 십자군 원정 때 받은 박해가 가장 심했다. 이들은 한겨울에 집에서 쫓겨나 산 꼭대기나 황량한 벌판으로 내몰려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가 하면, 높은 절벽에서 떠밀려 몸이 부서지고, 어떤 이들은 동굴 속에 갇힌 채 굴 입구에서 피운 장작 연기에 질식당하기도 하였다. 노인들과 갓난 아기들과 어린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목매달거나 몸을 쪼개서 내장이 나오게 하고, 쇠고랑으로 찌르며, 물에 빠뜨려 죽이고, 칼로 찌르며, 개들에게 갈갈이 찢겨서 죽게 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아 죽였다.

알비겐시즈(Albigenses)는 노바티안즈나 아리안, 도나티스트 및 로마 북부에서 롬바르디를 거쳐 남프랑스에까지 이르러 “이단”시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자손이었다. 1119년에 뚤루즈에서부터 시작된 일단의 종교회의들에서 이 이단들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었고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의 힘이 요청되었다. 이노센트 3세는 성경대로 믿는다는 이 분리주의자들을 이교도들(사라센, 모슬렘, 투르크족)보다 더 나쁜 존재로 인식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기 세력권(유럽)에서 카톨릭 교회의 단합을 위협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십자군” 원정 네 팀을 지원하여 알비겐시즈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도록 하였다. 이노센트 3세는 루이 7세와 레이몽 6세에게 자신을 돕도록 요청하였다. 시스터시안(the Cistercian) 수도회도 교황의 지시에 부응하여 프랑스, 플랑드르, 독일 전역을 다니면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 위해 필요한 군대의 출동을 주장하였다. 이 살인 조직에 동참하는 모든 지원자들에게는 모슬렘을 격퇴하기 위해 십자군에 참가한 자들과 동일한 보상이 약속되었다(이를테면 죄사함과 영생 등).

1209년 7월 카톨릭 군대가 베지에스(Beziers)를 공격하여 60,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학살하였다. 프랑스의 까르까손느(Carcasson- ne)에서는 모든 주민이 입고 있던 옷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마을에서 쫒겨났다. 미네르보(Minerve)에서는 만 사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귀와 코, 입술이 잘려진 채 불 속에서 죽어갔다. 교황 그레고리 4세는 브레멘과 올덴버그 근처의 알비겐시즈보다 더 많은 수십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독일 군대를 출동시켰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3월호  (통권 12 호)   page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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