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그의 제롬에 대한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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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후스박사의 동료이며 같은 순교자인 이 개혁가는 프래그에서 태어나 프래그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큰 학식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유럽의 다른 신학교들, 특히 파리대학, 하이델버그, 옥스포드 등을 방문하면서 그는 위클리프의 저작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책들을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했으며, 많은 노력 끝에 영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프래그에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이 위클리프에게 동조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의 교리들이 후스로 인해 보헤미아에서 상당히 발전했음을 알고 제롬은 이 위대한 개혁에서 후스를 돕기로 했다.

1415년 4월 4일 후스가 죽기 약 석달 전에 제롬은 비밀리에 콘스탄스로 갔다. 그가 도착한 사실이 알려지자 공의회는 그를 붙잡고자 했다. 그는 뒤로 물러서는 것이 현명함을 알고서 다음날 콘스탄스에서 약 1마일 떨어진 황제의 도시 아이버링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안전통행권을 주면 공의회에 나가겠다는 서신을 황제에게 보냈으나 거부되었다. 공의회에도 같은 요청을 했으나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힐소우에서 한 장교에게 체포되었다. 슐츠박 공작 하에 있던 그 장교는 공의회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럴 권한이 없는데도 그를 체포했다.

제롬을 손아귀에 쥔 슐츠박 공작은 지시사항을 얻기 위해 공의회에 편지를 보냈다. 공의회는 공작에게 감사를 표한 뒤 그를 즉시 콘스탄틴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제롬은 긴 사슬로 된 차꼬에 묶여 즉시 이송되어 무시무시한 지하감옥으로 옮겨졌다.

제롬은 후스가 당한 것과 거의 같은 대우를 받았다. 마침내 공의회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소인에 대해 변호할 기회를 요구했지만 거부되자 다음과 같이 외쳤다.

“얼마나 야만적인가! 나는 삼백사십 일 동안 수많은 감옥에 감금되었다. 나는 모든 궁핍과 인색함을 경험했다. 나의 적들에게는 비난의 기회를 실컷 부여하고 내게는 최소한의 변호의 기회도 주지 않다니, 당신들은 내 재판에서 전혀 나를 준비시키지 않은 채 악랄한 중상을 한다. 당신들은 나의 교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이단으로, 내가 고백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를 믿음의 적으로, 사제들에 대한 나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를 사제들의 박해자로 몰아붙였다. 이곳은 대공의회다. 이곳에 대해서 세상은 위엄과 지혜와 고결함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당신들은 사람들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은 외모에 치우치게 마련이다. 지혜가 있다고 자부할수록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더 주의해야 한다. 내가 변호하는 명분은 나 자신의 명분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명분이다. 이것은 후손들의 권리에 영향을 끼칠 명분이며 나 자신이 그 시험대 위에 있다.”

이 연설은 전혀 효력이 없었으며 제롬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고소당했다. (1)교황의 위엄을 조롱하는 자 (2)교황의 반대자 (3)추기경들의 적 (4)고위 성직자들의 박해자 (5)기독교를 증오하는 자.

제롬에 대한 재판은 그가 고소당한 삼일째에 열렸고 그 고소에 동의하는 증인들이 증언했다. 죄수는 스스로 변호를 준비했다. 그가 340일 동안 음침한 감옥에 갇혀 빛으로부터 차단되고 생필품의 부족으로 아사 직전임을 감안해 볼때 그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정신만은 이 모든 불리한 조건들을 뛰어넘었다.

그 집단의 가장 완고한 자는 그의 변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에 의해 그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의 감동적이고 고양된 연설은 시작부터 고집센 마음을 녹이고 미신에 찌든 마음에 찔림을 주었다. 그는 사실에 기초한 증거와, 악의와 중상에 근거한 증거를 분명하게 구별지었다. 그 모임 앞에서 그는 자신의 생애와 행동의 전체행로를 보여주었다. 그는 진리와 덕을 철회시키고자 하는 그의 적들에게 경멸을 표했다. 그는 후스를 극찬하고 순교자의 영광스러은 발자취를 따를 준비가 되었음을 선포하였으며, 위클리프의 변호할 만한 교리들을 언급하고서, 자신은 추호도 하나님의 교회를 거스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불평한 것은 성직자의 폐해와, 원래는 자선과 자비를 목적으로 했던 교회 재산이 사치스러운 의복과 눈의 만족에 사용된다는 사실이라고 말함으로 결론을 맺었다.

재판이 끝나자 제롬은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관례적으로 교황의 겉치레에 따라 시민의 세력으로 넘겨졌다. 그러나 그가 평신도였기 때문에 강등의식은 하지 않았다. 빨간 마귀들이 그려진 종이 모자가 그의 머리에 씌워졌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가장 비참한 죄인이 죽어야 할 죽음을 겪으셨으며 가시관을 쓰셨다. 그 분을 위해 나는 이 모자를 쓰겠다.”라고 했다. 신앙을 철회할 2일 간의 기간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 기간 동안 프로렌스의 추기경이 그를 개종시키기 위해 최상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제롬은 자신의 피로 자신의 교리를 인치기로 결심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사형장으로 가면서 그는 찬송가를 불렀으며 후스가 화형당했던 바로 그 장소에 이르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는 쾌히 화형대에 묶였다. 장작에 불을 지피기 위해 사람들이 그 뒤에 왔을 때 그는 “오냐, 내 눈 앞에서 불을 붙여라. 내가 그것을 두려워했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가 부르는 찬송가는 이내 화염 소리에 가려졌다. 그의 마지막 말은 “화염 속의 이 혼을 주 그리스도께 바칩니다.” 였다.

프로렌스의 학식있는 신사이며 교황의 비서이며 열성적이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카톨릭신자 포그는 레오나드 아로틴에게 쓴 편지에서 제롬을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했는데, 거기에는 제롬의 특이한 능력들과 덕에 대한 방대한 증거들이 있다. BB

< 다음호에 계속 >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5월  (통권 26 호)   page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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