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 - 요한복음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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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장의 끝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무시당하고 그의 증거가 거부되는 것을 보았다(3:26,32). 그리고 이것은 유대 민족 전체가 그리스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하게 될 일을 예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에게 돌이키는 것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3장과 4장은 많은 면에서 대조적이다. 첫째, 3장에서 우리는 “니코데모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 관해 읽을 수 있으나, 4장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여자에 관해 읽을 수 있다. 둘째, 니코데모는 정통 유대인이었으나, 여자는 무시당하는 사마리아인이었다. 셋째, 3장에는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인 자가 등장하나, 4장에는 방탕한 습관을 가진 여자가 나온다. 넷째, 3장에서는 니코데모가 그리스도를 찾아왔으나, 4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 여자를 찾으셨다. 다섯째, 니코데모는 “밤에” 그리스도께 왔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한낮에”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섯째, 독선적인 바리새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나, 이방인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4:1-3『그러므로 예수께서 요한보다 더 많이 제자를 삼고 침례를 준다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것을 주께서 아시고, (예수께서 친히 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고, 그의 제자들이 준 것이지만,) 유대를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가시니라.』

이것은 우리에게 침례와 구원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본문의 갈릴리는 마태복음 4:15의 “이방인들의 갈릴리”를 생각나게 하며, 이는 우리에게 대단한 교훈을 준다.『그때 사마리아인들이 주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시기를 간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머무시더라』(요 4:40).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의 유대인들을 떠나 있었던 기간은 2일이지만 그것은 곧 2000년을 나타낸다.



4:4-6『그런데 주께서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만 하였더라. 그리하여 주께서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수칼이라 하는 사마리아의 한 성읍에 오셨는데,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여행으로 피곤하시므로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셨는데, 때는 제육시쯤이더라.』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인이 다니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돌아왔을 때 앗시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동맹을 맺자고 제안해 왔다(스 4:1,2). 그때 거절당한(스 4:3)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고 유대인들이 성전과 수도를 재건할 때 가장 적극적인 반대자들이 되었다(느 4장, 6장 참조).

분명히 주께서는 제자들보다 더 지쳐 있으셨으며, 제자들이 마을로 음식을 사러 갈 동안 주님께서는 쉬셔야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땅에 계시는 참 사람이신 분에 관하여 배울 수 있다. 세상을 만드신 그가 피곤한 사람이 되어 야곱의 우물 곁에 앉아 계신다. 주님께서 한 말씀만 하셨더라면 모든 천사가 그를 시중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절대적인 신성을 강조할 때 자칫 그의 인성이 참된 것임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이셨다. 그는 먹고 마셨으며, 일하고 주무셨으며,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6절에서 제6시라는 시간에 주님께서 인성을 드러내신 것은 ‘6’이란 숫자가 ‘인간’을 가리키는 숫자임을 알려준다.

한편 4장에서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자에 관해 완전하게 알고 계시다는 하나님의 속성인 전지하심을 함께 드러내고 계신다. 이처럼 예수님의 온전하신 인성과 신성이 함께 보여지는 부분들이 복음서에서 많이 발견된다. 우리는 하루의 힘든 일로 인해 지치셔서 배 안에서 잠드신 그분께서 일어나시어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나사로의 무덤 곁에서 진정으로 슬퍼하시며 눈물 흘리신 그분께서 말씀으로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창시자”로서 서 계신 사실을 알고 있다.

본문에 나타난 야곱의 우물은 주님 자신에 대한 예표이며 그 물은 주님 안에서 발견되어야 할 구원의 예표다.『그러므로 너희가 구원의 샘들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라』(사 12:3). 이 야곱의 우물은 야곱에 의하여 구입된 것이다(창 33:18,19, 수 24:32). 요한복음 4:6의 “수칼”이라는 말도 “구입한”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여자에게 하나님의 선물에 관하여 말씀하신 곳은 참으로 적절한 장소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선물에 대한 모든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4:7-8『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는데,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하시더라. (이는 그의 제자들이 음식을 사기 위하여 성읍으로 갔음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단 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니코데모와도, 요한복음 8장에서 현장에서 붙잡힌 간음한 여자와도, 그리고 눈을 뜬 후 회당에서 쫓겨난 소경이었던 자와도(요 9:35) 그리스도께서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만나셨다.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만이 필요하고 그 사이를 중재해 줄 그 어떤 사람도 필요 없다.

본문은 요한삼서 7절의『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들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예증해 주는 놀라운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방인들로부터 음식을 거저 얻지 아니하고 값을 주고 샀던 것이다.



4:9-10『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유대인인 당신이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시나이까?”라고 하니, 이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는 교제가 없기 때문이더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너에게 말한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하시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께는 가능하니라.”고 하시더라』(눅 18:27). 이것은 하나님의 학교에서 배우는 최초의 교훈이다. 니코데모가 맨 처음 대답한 말은 “어떻게...”라는 말이었고(요 3:4), 구세주의 요청에 이 여자가 최초로 대답한 말도 “어떻게...”라는 말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니코데모를 대하실 때에 그는 자기 자신을 진리로 드러내셨다. 그러나 여기 요한복음 4장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은혜’를 볼 수 있다. 주님 자신을 놋뱀의 위대한 원형으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해 주심으로 니코데모에게 답변해 주셨던 예수님께서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받는 것이다. 죄인은 구주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행위나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즉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의 창시자요, 생명을 주시는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이다.

그녀의 경우는 니코데모와는 전혀 달랐으나 복음은 모든 사람을 공통된 위치에 둔다. 이스라엘의 선생보다 더 높은 위치도 없으며, 간음한 사마리아 여자보다 더 낮은 신분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둘 다 지옥에 가기에 충분한 더러운 죄인일 뿐이다. 니코데모나 이 여자는 둘 다 죽어 있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갖지 못했다. 생수는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말한다. 이 선물은 그리스도로부터만 얻어질 수 있다.



4:11-12『그 여인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그 생수를 얻겠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그와 그의 자손들과 가축들이 여기서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위대하시니이까?”라고 하니라.』

주님은 그녀의 “어떻게”라는 물음에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에 대해 말씀하심으로써 답변하셨다. 이제 그녀는 “어디서” 이것을 얻을 수가 있느냐고 묻고 있다.

합법적이고 정당하고 필수적인 일들이 바로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을 거절하게 만든다. 이 사마리아 여인도 그러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육신적인 필요와 일상적인 업무에 생각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물 길을 그릇”에 너무도 전념해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우물은 깊다. 다시 말해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기 떄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물 길을 그릇이라는 도구를 찾는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인간의 수고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롬 3:20)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혹 우리 안에 있는 “선한 것”을 잘 개발시키는 것으로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것을 어떻게 행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노라.』(롬 7:18)이기 때문이다.

이 여인의 마음 역시 목적보다는 수단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리스도보다 “물 길을 도구”에 관심을 두었다.

우물은 인간이 죄인된 것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복음은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먼저 아브라함에게 전하여졌다.『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갈 3:8). 그렇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우리의 타락한 첫 조상들이 가죽옷을 입게 되었을 때 아담과 이브에게 전해졌다(창 3:21).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목마르게 되었을 떄부터 생수를 준비해 두셨다.



4:13-14『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시니라.』

이 세상이 주는 모든 물은 그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사람들을 권면하고 설득하여 결심하게 하고, 우리의 생활을 수정하게 하며 아주 종교적으로 만들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결국 다시 목마르게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적인 체계들은 생수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이신 주님으로부터 이 생수를 공급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다시 목마를 수 밖에 없다.

“다시 목마르려니와”에 대한 또 하나의 예증이 누가복음 16장에 제시되고 있는데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고통 중에 눈을 들어 자신의 바싹 바싹 타는 혀를 서늘하게 해 줄 한 방울의 물을 갈구하는 죄인의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은 거듭난 사람들의 구원이 영원히 안전하다는 것을 보증해 준다.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1월  (통권 68 호)   page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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