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을 예비하는 자 : 침례인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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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의 많은 예언들의 성취로 왕은 탄생했다.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셔서 팔레스타인 땅에다 그 분의 왕국을 세우려 하신다. 그는 다윗의 가문에서 탄생하시어 왕의 자격을 갖추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심으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다. 이제 팔레스타인 땅에는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바라던 메시야의 통치,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완전한 신정정치가 이루어질 순간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선행되어야 할 일들이 있었다.







3:1-3 『그 무렵에 침례인 요한이 와서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니 이 사람은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그 사람이라. 말하기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라.’”고 하였더라.』



앞서 언급한 대로 예수께서는 예언을 성취하시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 민수기 4:43에 따르면 레위인 사역자들은 모두 30세가 되어야 성전의 일을 수행할 수가 있는데, 예수께서는 이제 30세가 되시어 그의 사역을 행하실 때가 되었다.

그러나 이 메시야 사역이 이루어지려면 선행되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왕의 길을 예비하는 일이다. 그 일을 행하기 위해서 여기 침례인 요한이 서 있다. 침례인 요한은 이사야서에서 예언된 대로 왕의 길을 예비하는 선두주자(forerunner)이다. 그는 예언된 엘리야(말4:5)이며, 광야에서 외치는 음성이다.

그가 설교한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이다. 그리고 이 회개는 왕을 맞아들이는 준비가 되고,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이 임하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말라키 4:5-6과 누가복음 1:17에서 예언한 바와 같이,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아비들에게로, 불순종한 자들을 의인들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백성을 예비시킬 것이다.

메시야 왕이 오시기 전의 이스라엘의 상태는 목자없는 양의 상태, 흩어져서 들짐승들의 먹이가 된 상태이다(겔34:5, 마9:36). 이 “엘리야”는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 전에 와서(말4:5) 그의 사역, 곧 왕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하게 된다. 그 방법은 침례이다. 그는 유대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푸는데,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회개”의 표시로 침례를 받는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회개하라.”이고, 천국이 임하기 전에 유대인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이다. 이 “천국”(the King- dom of Heaven)은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신정통치 국가를 의미한다. [천국(the Kingdom of Heaven)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여코냐 이후에 다윗의 보좌에는 왕이 끊어졌고, 이제 그 보좌에앉아 의로 통치하실 왕이 나와야 한다. 그 왕을 유대인들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왕이 임하시기 전에 그 길을 닦아 놓는 사역을 침례인 요한이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침례를 베푸는 것이다.



3:4 『이 요한은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야생꿀이더라.』



이 구절은 열왕기하 1:8의 엘리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는 털의 사람이었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다. 침례인 요한이 엘리야라는 사실은 구약의 예언이 이 요한에게 적용되기에 확실하다. 말라키 4:5에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보낸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약속을 누가복음 1:17에다 적용하고 있다. 마가복음 1:2-3은 침례인 요한에 대한 설명인데, 3절은 이사야 40:3의 예언이고, 2절은 말라키 3:1의 예언으로 말라키 4장의 엘리야와 연결된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이 요한이 엘리야임을 증거하셨다(마11:7 -14).

그러나 요한 자신은 요한복음 1:21에서 “네가 엘리야냐?”고 묻는 질문에 “아니라.”고 부정했다. 예수님과 요한의 이러한 상반된 주장에 대해서 예수님께선 『너희가 그 사실을 받을 의향만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셨다(마11:14).

엘리야는 왕의 길을 예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의 예비작업이 있은 후에는 왕과 왕국이 임해야 한다. 그런데 왕은 오셨지만, 그 왕은 거부되심으로써 왕국은 임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실제적인 다윗의 보좌에 앉으시는 왕이 다스리는 왕국을 만들지 못했다. 영적으로 왕국이 임했다고 하는 무천년주의 학자들과, 그 왕국이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확장된다고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의 그럴듯한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그 왕국은 아직 임하지 않았다. 그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계19:11- 16; 20:1-6). 그러므로 침례인 요한은 완전히 엘리야가 되지 못했고, 단지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온 사람이 된 것이다. 구약에서의 “왕의 오심”(the Advent of the King)은 재림까지도 포함하고 있지만, 성령께서 그의 영광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하실 때, 침례인 요한이 완전히 엘리야가 되지 못할 것을 아시기에 누가복음 1:17에서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라고만 기록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재림때 왕국이 이루어질 것은 분명한데, 그러면 엘리야는 재림에 앞서 다시 나타나야 한다. 그가 바로 계시록 11장에 나타나는 두 증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피터 럭크만의 계시록 11:3-12의 주석을 보시오).



3:6 『자기들의 죄들을 자백하고 요단강에서(in Jordan)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이 침례는 분명히 물에 잠기는(immerse) 침례가 분명하다. 요단강 안에서(in) 주었고, 그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마 카톨릭을 비롯한 많은 개신교회에서 물뿌려 “세례”(sprinkle) 주는 것은 전혀 성경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의 그림쟁이들의 그림에 보면, 예수님과 요한이 요단강 물에 허리쯤 잠기도록 들어가서, 요한이 바가지로 물을 퍼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그림을 볼 수 있다.)



3:11-12 『나는 정녕 회개시키기 위하여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 분의 신을 들 만한 자격도 없느니라. 그 분은 성령으로 또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 그 분은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실 것이며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



침례인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말해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또 불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요,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시는 분이다. 그는 알곡과 쭉정이의 분리 작업을 통해서 알곡에 속한 사람들은 구원하시고 쭉정이에 속한 사람들은 심판하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의 알곡과 쭉정이들은 일차적으로 유대인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19:16-22에서는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시편 1편에서는 복있는 사람을 주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악인은 ‘쭉정이’로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은 율법과 관계된 백성이고, 왕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러한 율법적인 의와 관계된다.

이 상황은 왕국이 임하기 직전의 상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세우실 때 그는 야곱에게서 불경건한 것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다(롬11:26, 사59:20). 이 날은 “대환란”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인데, 그는 이 날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허물을 씻을 것이고, 그 환란의 때에 알곡과 쭉정이는 분리되어, 이 심판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그의 왕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요엘 2:28에 나타난대로 그는 그의 영을 부어주셔서 그의 백성을 성령으로 보호하시지만, 자신들의 행위로 끝까지 견디지 못한 자들은 결국 쭉정이로 분류되어 불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물론 영적으로 적용한다면 교회시대의 구원받은 성도들도 알곡이라고 말하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쭉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침례인 요한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사역이기 때문에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율법의 행위를 지키는 사람(계12:17), 좀더 예언적으로 말하면 환란시대에 끝까지 견디는 유대인(마24:13)이 알곡의 범주에 들어간다.

우리는 이 두 구절에서 3가지의 침례를 볼 수 있는데, 첫째, 요한의 물침례 둘째, 성령침례 셋째, 불침례이다. 이와 연관해서 성경에서는 7가지 침례가 나오는데, 한번 정리해 보자.



1. 모세의 침례 (고전10:2)



이 침례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홍해를 지난 것과 구름기둥 아래서 행한 것을 말한다. 성령께서는 이 사건을 “침례”라고 설명하고 계신다. 이 침례는 이스라엘 민족이 따로 부르심을 받은 민족의 표시이기도 하다(Called-out Assembly).



2. 요한의 침례 (마3:6)



이 침례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요한이 엘리야의 사역, 즉 왕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행하는 것으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죄를 씻고 왕을 맞이하는데 필요한 행위이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부정한 것을 만졌을 때 손을 씻었다. 이것은 정결례이다. 죄로부터의 돌이킴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왕을 맞기 위해서 자기들의 죄를 씻는 정결례를 행해야 했다.



3. 십자가의 침례 (마20:22)



세베대의 두 아들, 곧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각각 오른 편과 왼 편에 앉게 해 달라고 구했을 때, “내가 받는 그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이 침례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말한다. 혹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것을 이 침례와 연관해서 설명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지만, 이 침례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침례받은 것은 두번째 침례, 곧 요한의 침례에 속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5)고 말씀하셨는데, 이 의는 율법의 의이다. 주님은 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의 육신을 입어야 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율법에 속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왕이 되기 위해서 율법 아래로 들어가셔야 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의가 요구하는 그 요구에 맞추셔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침례받으신 것은 요한의 침례에 속한다.



4. 유대인의 침례 (행2:38)



이 침례는 요한의 침례와도 연결된다. 그것은 메시야 왕을 받아들이기 위한 침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의 침례와 다른 것은, 이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이후에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기다렸던 왕이 오셨는데 그를 거부했다. 그들은 왕을 거부한 죄가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왕을 거부한 그 죄를 씻으라고 설교한 것이고, 회개와 침례를 요구했다. 요한의 설교와 같다. 그러나 요한의 침례가 왕이 오시기 전에 왕을 영접할 자세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면, 이 침례는 왕을 거부한 죄를 씻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침례에는 표적이 따른다(행2:43; 8:17; 19:6).



5. 이방인의 침례 (행10:48, 마28:19)



이 침례는 교회시대의 성도들이 받는 침례로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고백이 필요하며, 그 공개적인 간증으로서 받는 침례이다. 이때, 이 침례는 구원을 이루거나 죄사함 받는데 아무런 효력이 없다. 침례로는 구원받지 못하며, 그것은 단지 선한 양심의 고백일 뿐이다. 물은 모형이다(벧전3:21). 이 침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곧 삼위일체 되신 주(Lord)의 이름으로 받는다(마28:19, 행10:48). - 이방인의 침례와 유대인의 침례에 대해서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93. 9월호의 「BB 평론 4」를 보시오.



6. 영적 침례 또는 성령침례(고전12:13, 엡4:4-5, 마3:11)



이 침례는 세상에 속해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그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잠기는 침례를 말한다. 고린도전서 12:13에서도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지역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에 속하는 이 침례를 받은 성도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다. 이 침례는 구원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고, 묻히셨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영접하면서 일어난다(고전15:3-4). 그래서 성도가 물침례를 받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묻혔고, 또 부활했다는 간증을 하는 것이다(그래서 물에 잠겨야 한다).

이 침례는 방언을 말하는 침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소위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외형적 역사처럼 보이는 것들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외형적 역사처럼 보이는 것들을 행하는 것이 성령침례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잠기는 것, 곧 구원받는 것이 성령침례이다.



7. 불 침례 (마3:11)



많은 사람들은 이 불침례를 성령침례로 오해한다. 오순절에 불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난 것은(행2:3) 불이 아니다. 그런 형태로 임하신 모습은 불로 침례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3:11의 불은 지옥 불을 의미한다. 그것은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 12절의 말씀과 연관해 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시는 분께서는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신다. 이것이 불로 받는 침례이다. 모든 시대를 포함하여 구원받지 않은 모든 사람은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 만약 성령침례를 받지 못하면 그는 불침례를 받게 된다. 이것을 모르고 불침례를 받으라고 말하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는 청중들을 지옥에 가라고 설교하는 것이다. BB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4월  (통권 25 호)   pag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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