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보좌, 그 영광의 계승자
조회 : 7,985
크게 작게 크기저장 초기값
지난 호에서는 마태복음의 서론으로서, 마태복음의 성경적 위치 즉 전환기적인 책이라는 것과, 마태복음의 주제 곧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예언, 특히 다윗과의 언약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시키시는 분임을 설명했었다. 이어서 이번 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예언을 이루시는지 그 분의 계보를

살펴 보면서 알아 보기로 하자.



1:1 『다윗의 아들이요,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의 책이라.』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나오는데, 이 계보는 “메시아의 계보”(the Messianic line)이다. 이 계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의 정통성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 정통성은 조그마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왕적 혈통임을 나타낸다. 여기서 순수하다고 한 것은 ‘왕적’(loyal) 혈통이라는 관점에서 순수하다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건의 계통’(godly line)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더럽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장에는 5명의 이방인 여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다말(3절), 라합(5절), 룻(5절), 밧세바(6절), 그리고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르호보암의 아내인데, 다말은 가나안 여인으로서 시아버지인 유다 사이에서 아들들을 낳았던 여인이고(창세기 38장), 라합은 아모리 여인으로서 직업적인 창녀였으며[야고보서 2:25의 포르네(πορνη)라는 단어는 분명히 창녀를 가리킨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서 보아스의 침소 속으로 몰래 들어갔었고(룻기 3: 7-9), 밧세바는 다윗을 유혹했던 히타이트 여인이며(삼하11:2-4), 르호보암의 아내는 암몬 여인이었다. 이들 중 적어도 3명이 간음죄와 관계가 있으며, 그 중 한 명은 직업적인 창녀였다. 또한 솔로몬은 1000명의 아내를 거느렸고, 언급된 왕들 중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왕들도 있었다. 참으로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경건의 혈통’이라고 하기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보는 ‘메시아의 혈통’인 것이다. 이 말은 왕의 정통성과 관계가 있는데, 그 왕의 정통성은 ‘다윗의 보좌’를 차지하는데 있고, 그러기 위해서 다윗의 씨임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역사서를 자세히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태복음 1장의 이 계보가 실제 유다 왕들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며, 또한 누가복음 3장을 자세히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태복음의 족보와 누가복음의 족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좀더 면밀히 이 부분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차이들이 성령님의 의도였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을 것이다.

구약 역사서들에 나타난 왕들의 역사와 그 행적들은 그 당시의 역사적 사실들을 정확하게 제시해 준다. 누가복음은 위로는 하나님부터, 아래로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오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통성과 관계 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잘라버리시고 그 씨에 관해 오해가 있을 만한 부분에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신다.

6절에서 『다윗왕은 우리아의 아내였던 여인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에서 “아내였던”(of her that HAD BEEN the wife of Urias)이라는 표현을 주목하라. 이 말은 솔로몬을 낳을 당시에는 밧세바가 이미 우리아의 아내가 아닌 다윗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밧세바가 우리아의 아내였을 때 다윗과 간음해서 낳은 아들은 데려 가셨다. 그리고 밧세바는 다윗의 정식 아내였을 때 솔로몬을 낳았다(삼하12:22,23).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혈통에 순수하지 못한 우리아의 씨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그 간음으로 낳은 아들이 죽었다는 기사를 역사서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계시면서도, 마태복음에서 다시한번 강조해서 기록하심으로써 그 ‘씨’에 대한 의문을 완전하게 불식시키셨다.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내려갔을 때 하나님께서 사라로 하여금 범죄하지 못하도록 하시어 이집트 왕의 씨가 섞이지 못하게 하셨음을 보이시는 것과도 같은 목적으로써 밖으로부터 순수하지 못한 씨가 섞여서 왕의 계보에 불순의 여지를 남길수 없다는 강력한 의도이시다. 단지 솔로몬이 간음으로 낳은 자식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씨의 순수성이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변개된 <개역 한글판>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by the wife of Urias)라고 표현했으며, 개역표준역본(RSV)과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원문 역시 그러하다.



1: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아를 낳고』

여기서 첫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우리는 ‘아들(son)’이라는 개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1:1은 『다윗의 아들(son)이요, 아브라함의 아들(son)인 예수 그리스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구약을 통틀어 성경에서 ‘아들’(son)이라는 말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 ‘아들’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는 문자적인 직계 아들을 뜻하지만, 때때로 손자 이상을 포함하는 ‘자손’(children)과 ‘사위’(son-in-law), ‘양자’, 심지어 ‘의붓아들’(step-son)까지도 단지 ‘아들’(son)이라는 말로 표현되곤 한다. 이 개념을 알면 구약에서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데,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내용도 이 문제와 관련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직접적인 아들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아들’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면 문제점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1:8에서의 문제는 구약의 유다 왕의 연대기와 틀리다는 것이다. 역대하 21-25장을 보면 여호사밧과 웃시야 사이에는 4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들은 요람(21:1), 아하시아(22:1), 요아스(24:1), 아마시아(25: 1)이다. 그러나 성령께선 마태복음 1장에서 여호사밧과 웃시야 사이에 단 한 명의 왕, 곧 요람만을 기록하고 계시다. 구약 역사서의 관점에서 보면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잡혀갈 때까지 17대가 된다. 그러나 마태복음 1:17은 14대라고 말한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과 배교한 신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성령님의 의도적인 생략이다. 그렇다면 아하시아부터 아마시아까지는 왜 메시아의 계보에서 빠져야 했는가?

역대하 22:2을 보자. 『아하시아가 치리하기 시작할 때 사십이 세였고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였으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로 오므리의 딸이더라.』 역대하 22:1에서 아하시아는 『유다의 여호람(요람)왕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아하시아는 여호람(요람)과 그의 아내에 의해서 태어난 정상적인 여호람의 아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호람이 죽을 때의 나이는 40세였는데(대하21:20), 그가 죽고 아하시아가 왕이 될 때 아하시아는 42세였기 때문이다(대하22:2). 분명히 아하시아는 여호람의 문자적인 아들이 아니다. 아하시아는 또한 여호사밧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대하22:9). 또한 역대하 21:2에서는 여호사밧의 아들들의 이름 중에 아하시아의 다른 이름인 아사랴가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여호사밧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알기로 여호사밧은 분명히 남왕국 유다의 왕이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역대하 21:2에서 『이스라엘의 여호사밧왕』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의 르호보암부터 시드기아(유다의 마지막 왕)에 이르기까지 열지파로 구성되어 있는 북왕국의 왕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칭호를 갖지 못하고 ‘유다의 왕’이라는 칭호를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외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남왕국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불린다. 이 때에 잠시 동안 통일 왕국이 되었었는가? 아니다. 그러나 이때에 남북 왕국들은 군사적인 동맹을 했었다(대하18:1-34).

문제는 이 때 발생한다. 이 동맹은 단지 군사적인 동맹 이상의 것이었다. 이 동맹은 혈연적인 동맹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혈연적인 동맹은 고대 국가들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는데, 여호사밧은 이때 오므리의 딸이며 아합의 누이인 아달랴를 아내로 맞이하며, 그때 아달랴에게는 이미 22살의 아들 아하시아가 있었다. 그래서 아하시아는 여호사밧의 ‘아들’(의붓아들)이라고 불릴 수 있었고,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 오므리(아합의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하시아는 이때 여호사밧이 전쟁터에 나가 비어있는 유다의 왕좌에 앉게 된다. 그러나 여호람(요람)이 죽어 정식으로 왕이 되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이 지난다. 『아하시아가 치리하기 시작하였을 때 이십이 세였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였으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로 이스라엘의 오므리왕의 딸이더라.』(왕하8:26). 이 구절은 42세에 왕이 되었다고 말하는 역대하 22:2과 모순인 것처럼 보이나 아하시아가 왕으로 임명되었다가 20년후(42세)에 다시 왕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혀 모순이 아니다. 아하시아가 왕이 되기 전에 낳은 어린 아들 요아스는 열왕기상 22:26에서 『왕자(THE KING'S SON)』라고 불린다. 아하시아는 그때 ‘왕’으로 불렸다. 또한 여호사밧의 마지막 20년중 마지막 8년은 그의 아들 여호람이 함께 통치했다. 이때 여호사밧은 북왕국의 또 다른 아하시아왕과 동맹하여 나갔고(대하20: 35), 여호람은 유다의 보좌에 앉아있었다.

자, 그러면 이 아하시아는 어떻게 해서 여호람(요람)의 아들로 여겨질 수 있었는가? 그의 어머니는 분명히 오므리의 딸(개역 한글판이 말하는 것처럼 손녀가 아니다) 아달랴이고, 그의 의붓 아버지는 여호사밧이다. 그의 실제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첫째 아하시아는 여호람의 딸 시비아와 결혼하여 여호람의 사위(son-in-law)가 됨으로서 ‘아들’로 여겨졌다(왕하8:27, 대하24:1). 여호람은 아합의 딸과 결혼함으로 아합의 집에 속한 자가 되었고(왕하8:18), 아하시아는 여호람의 딸과 결혼하여 아합집의 사위가 되었다(왕하8:27). 둘째, 여호람은 아하시아가 태어난 한참 이후에 아달랴와 결혼했을 것이다(레18:8). 그래서 아하시아는 여호람의 의붓아들, 즉 ‘아들’이 된다. 어쨌든 이 두가지 가능성 모두를 통해서 볼 때, 아하시아는 분명 유다왕의 씨가 아니다. 아마도 바알 숭배자인 아달랴가 이름 모를 씨를 받아서 낳은 아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하시아는 왕의 ‘씨’를 다루는 마태복음 1장의 계보에서 빠질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씨인 요아스와 아마랴도 당연히 메시야의 계보에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시야의 계보는 요람의 씨인 웃시야로 뛰어넘어 계속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내려오는 메시야의 계보는 요셉에까지 이어진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친아버지는 아니나 왕의 정통성으로 볼 때 적어도 다윗의 순수 혈통을 가진 다윗의 아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인 메시야로서의 가계(家系)가 필요하셨고, 그래서 그 가계로 유입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씨’에 대한 관점에서 볼 때,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 자연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요셉의 씨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씨로는 메시야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셨는데, 예레미야 22:30에서는 여고냐에 대해서 『그의 씨에서는 아무도 번성치 못하며 다윗의 보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더이상 없을 것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만일 그리스도가 여고냐(코니아)의 씨를 받은 요셉의 씨로 태어났다면 그는 다윗의 보좌에 앉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요셉의 가계만 빌리시고 그 피는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통해서 받아 오신 것이다. 마리아도 역시 다윗의 딸이므로 왕족이다. 누가복음 3장의 계보는 마리아의 계보인데, 3:23의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여자는 씨가 없기 때문에 요셉이 마리아와 혼인함으로써 사위가 되어 ‘아들’로 불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피를 잇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씨’인 가계로는 요셉의 가문을 사용하시는 것이며, 실제의 씨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게 된다(마1:21). 바로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자, 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하시게 되는데, 이 탄생은 철저히 예언에 근거한 것이다. 직접적인 예언은 이사야 7:14의 예언으로 마태복음 1:23에 인용되어 있지만, 보다 앞서 이 탄생은 아브라함의 언약(Abrahamic Covenant)와 다윗의 언약(Davidic Covenant)을 성취하시는 것이다(지난호 참조). 그러나 21절을 주목하라.



1:21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다시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를 나타내는 책이라는 것이 강조되는데, “자기 백성”은 일차적으

로 유대인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백성이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킬지라도, 여기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또 교리적으로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누가도 이것에 대해 말했다(눅1:68-77, 특히 77절). 베드로도 이것에 대해 말했다(행3:26). 이 말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열어 준 사도행전 10:43까지는 아직 이방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의 백성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구약의 여러 구절들에서 명백하다(신32:36,43, 시44:12; 83:3; 85:8, 등등).

유대인은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 시대에는 일부가 반역하여 나갔지만(롬11:25), 마지막 때에 유대인들은 그들의 죄를 씻고 다시 회복할 것이다(롬11:26,27). 이 구절은 예언적인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왕으로 오셨으나 당시에 그들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말씀은 예언적으로 재림때 다시 이루어 질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자기 백성”의 구세주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보좌를 그렇게도 강조하셔서 그 씨와 가계를 지키고 계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언약이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서 육신의 몸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완고함으로 이 시대(교회시대, 은혜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가 끼쳐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왕을 개인적인 “구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유대인들의 특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넘어와서 그는 구주가 되셨다. 믿음으로인해 아브라함의 언약을 받아 “자기 백성”에 포함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만 이 은혜의 날이 닫혀질 때, 다시 유대인들의 구원이 이를 것이다. 이 은혜의 날이 닫히기 전에 우리는 이방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자기 백성”의 범주에 들여오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BB < 다음호에 계속 >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2월  (통권 23 호)   page : 8

 
   
 

 
고객센터 |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상호명: 말씀보존학회 │ 대표자명: 이송오 │ 주소: 서울특별시 강서구 금낭화로 135 (금강프라자 7층)
  • 사업자 등록번호: 105-99-34323 │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제 16-1956호 │ 메일: admin@biblemaster.co.kr
  • 전화 : (02)2665-3743~4 │ 팩스: (02)2665-3302
Copyright ⓒ www.biblemaster.co.kr. All rights reserved.